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설스튜디오에 최근 개장한 ‘해리포터의 마법나라’(위 사진)는 소설과 영화의
팬이라면 찾아볼 만하다. 4차원(4D) 롤러코스터를 타고 기념품 매장을 둘러보고 나면 거리에서 파는 버터비어 한 잔 사먹고
싶어진다. 지난해 개관한 팝아트 갤러리 ‘더 브로드’(아래 사진)는 벌집 같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아이들도 좋아할 만큼 지루하지
않은 미술관을 찾는다면 여기다. 캘리포니아 관광청 제공
“아, 매일 아침 이 느낌이면 얼마나 좋아. 회사도 안 가고.”
지난달 어느 날 오전 10시 20분. 왼손에 커피잔을 들고 오른손엔 카메라를 들었다. 조금 덥지만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에 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내 ‘그랜드 센트럴 마켓’. 세 방향이 뚫려 햇살이 들어오는 널찍한 반지하 식료품 시장. 구석 가게에서 갓 나온 따끈한 계란 요리로 아침을 때웠다. 과일, 치즈, 수제주스 가게를 둘러봤다. 감탄이 나온 건 뉴욕타임스가 극찬했다는 카페 ‘G&B 커피’에서 G&B 셰이크를 시켜 한 모금 들이켰을 때다.
한마디로 지독한 셰이크.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얹은 뒤 마구 흔든 이것은 악마의 음료다. 진한 커피 향과 바닐라 향에 지나치다 싶게 단맛이 어우러지니 다이어트족에겐 딱 극약이다.
12년 전 학생 시절 관광 명소 몇 곳 훑고 지나갔던 로스앤젤레스 시에 새로운 문화 공간,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이 생겼다고 해서 와봤다. 직장인 돼서 일에 치이다 쓴 커피 맛에 눈을 떠서인지 일단 셰이크 한 잔에 기분이 좋아졌다, Y야. 우리 대학 다닐 때야 주머니 가벼워서 이렇게 여유로운 여행을 했겠냐. 같이 음악, 문화 좋아하는 입장에서 너한테 자랑 좀 하려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장 올리는 걸로는 성에 안 차서. 미안. 좀만 참아라.
안 지겨운 미술관이 오랜만
옛 선현께서 일찍이 가로되, 밥 먹고 열 발짝은 걸어야 체병으로 안 죽는다고 했다. 기분 좋은 햇살을 맞으며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른다. 10분 30초쯤 걸었다. 오른편에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나타났다. 프랭크 게리가 건축한 삐죽삐죽 은색 건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안방. 지붕 위로 트랜스포머 로봇이 기지개를 켠 데도 믿겠다. 이 미래적인 빌딩에 걸맞은 현대음악 시리즈인 ‘그린 엄브렐러’가 내년까지 계속된다.
사실 목적지는 그 맞은편 건물. 작년 9월에 오픈한 팝아트 갤러리 ‘더 브로드(The Broad)’다. 하얀 벌집 같은 빌딩 모양새가 콘서트홀의 기괴한 미모에 안 뒤진다. 바스키아, 재스퍼 존스, 바버라 크루거, 제프 쿤스, 앤디 워홀을 비롯한 다양한 팝아트 거장들 작품이 2000점 넘게 있다. 작품 면면도 괜찮지만, 갤러리의 독특한 구조와 내벽이 거대한 미술작품과 묘한 구도를 이루는 명장면이 여기저기 숨어 기다린다. 이를테면 검정과 빨강이 대비된 크루거의 ‘무제’ 뒤로 로버트 세리언의 대형 식탁 작품 ‘언더 더 테이블’이 보일 때라든가….
호텔, 엄마가 하지 말라던 거 하기 좋던
아 참, 자꾸 자랑해 미안하지만 다음 날 호텔이 아주 끝내줬다. 셀마 애비뉴에 있는 마마셸터(mamashelter.com). 1박에 179∼249달러짜리니까 딱 하룻밤만 묵자.
일단 디자인이 맘에 든다. 아이맥이 설치돼 있다.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좋다. ‘엄마 쉼터’란 이름처럼 ‘엄마가 신경 써 고른’ 같은 라벨이 달린 욕실용품도 질 좋고 감각적이다. 침대 머리맡에 성경이 있는데 그 위에 키스 리처즈(롤링스톤스 기타리스트)의 자서전이 올려져 있다. ‘쿨’한 자들의 쉼터다.
마마셸터는 음악에 미친 자들에게 최적의 입지다. 걸어서 50초 거리에 있는 중고 음반점 ‘레코드 팔러’(therecordparlour.com)는 죽인다. 팔러 갔다 사갖고 나올 지경이다. 록, 재즈, 블루스 중고 LP가 많다. 단돈 2, 3달러에 훌륭한 재즈음반을 수두룩하게 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계 차고 가라. 2분 만 더 걸으면 음반 애호가의 천국 아메바 뮤직이 나온다. 갔더니 여기선 1달러짜리 중고 CD 특집전이 한창이다. 여행가방 하나 더 살 각오하고 갈 일이다.
‘해리포터의 마법나라’의 이유 있는 반항
록 음악에 빠져, 아닌 나이에 반항하고 싶어졌다? 툭 털고 그리피스 천문대에 올라가라. 마마셸터에서 차 타고 오르막길 16분. 산 위에 돔을 인 이국적인 흰 건물 안엔 천체망원경도 있지만 옥상에서 보는 일몰이 최고다.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내려다보며 호연지기를 먼저 기른다. 건물을 바라보고 마당 오른편에 있는 제임스 딘 동상을 찾아라. ‘이유 없는 반항’을 비롯한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여기서 찍었다. 제임스 딘 얼굴 오른편으로 멀리 보면 할리우드 사인이 보인다. 옥상에서 해질 무렵 프러포즈하면, 결혼할 수 있을 거다.
그 다음 날은 어디 갔게. 유니버설 스튜디오. 옛날에 가봤다고? 4월 7일 개장한 ‘해리포터의 마법나라’는 이곳의 스카이라인을 바꿔 놨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올빼미랑 지팡이를 사던 골목이며 깎아지른 절벽 위 호그와트 마법학교도 재현해 놨다. 마법학교에서 쓰는 올빼미, 지팡이, 모자, 교복을 파는 기념품점은 눈요기만 해도 재밌다. 마법학교 안에 있는 4D 롤러코스터는 어른이 타기에도 제법 아찔하다. 3D 안경 끼고 해리포터랑 퀴디치 게임장을 날아다니는데 식전이나 숙취 중, 어지러울 때 타면 안 좋다. 골목에서 파는 무자비하게 단 버터비어(무알코올)가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가면 기타 소리가 들려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 독특한 조슈아 나뭇잎을 배경으로 내려다본 코첼라 계곡. 4월 코첼라 페스티벌을 놓쳤다면 10월 7∼9일 롤링스톤스, 밥 딜런, 폴 매카트니가 참가하는 데저트 트립 페스티벌을 노려 만하다.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는 차로 2시간쯤 떨어져 있지만 축제장이 있는 인디오에서 이 공원은 가깝다. 캘리포니아 관광청 제공·로스앤젤레스=임희윤 기자 우리로 치면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랑 경기 파주를 합쳐놓은 듯한 지역, 아츠 디스트릭트에도 들렀다. 나만 먹어 또 미안하지만 미식 투어라니 당겼다. 식당 여섯 곳을 돌았다. ‘데일리 도스 카페’(dailydosela.com)는 옛날 기찻길 때문에 둥글게 휜 야외 테라스만큼이나 채식주의 샌드위치가 인상적이었다. 비트랑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가 네가 좋아할 것 같다.
근처에 있는 와인·유기농 식품 가게 ‘어번 래디시’(urban-radish.com)에서 캘리포니아 와인 한 병 샀다. 멀지 않은 와인 바 ‘푸어 하우스’(pourhauswinebar.com)는 쇠꼬리 타코로 유명하다. 보신될 듯 한국적인 맛이니 너도 좋아할 것 같다. 20달러쯤 내면 20가지 와인을 시음하고 30가지 퀴즈를 풀면서 추리게임처럼 와인 공부를 하는 모임에 참가할 수도 있다.
다음 날, 로스앤젤레스를 떠났다. 차로 한 시간 반을 동쪽으로 달려 사막 기후가 이채로운 작은 도시 인디오에 닿았다. Y야, 너에겐 미안하지만 매년 4월 말, 20만 명이 찾는 대중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을 보러 간 거였다. 건스 엔 로지스, 시아, 카마시 워싱턴의 살벌한 무대를 보는데 네가 진짜 보고 싶더라. 스크린 크기, 무대 연출, 축제장 규모…. 여러모로 볼 때 우리나라 록 페스티벌의 1.5∼3배는 되는 듯했다. 혼자 보기 아까웠다.
사실 코첼라 페스티벌 3일 중에서도 두 번 외도를 했다. 공연이 없는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첫날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갔다. 인디오에서 차로 30분쯤 달리니 마른 사막 위에 두 팔 벌려 고행을 자처한 듯 기이한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U2의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에 나오는 질주하는 기타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20분쯤 더 들어가니까 조슈아 트리와 돌산이 어우러진 화성 같은 곳에 당도했다. 가이드해 주는 보안관 찰리 씨와 코첼라 밸리(이 계곡에서 페스티벌 이름이 나왔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었다. 전설적인 컨트리 록 밴드 더 버즈의 그램 파슨스의 유해가 뿌려졌다는 돌산에서 찰리의 옛날얘기같이 친절한 설명이 빛났다.
▲프랭크 게리의 작품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는 LA필하모닉이 특이한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공연 시리즈 ‘그린 엄브렐러’가 내년까지 열린다. 캘리포니아 관광청 제공·로스앤젤레스=임희윤 기자
엘비스 프레슬리 신혼집 엿보는 재미
전날 밤까지 공연을 봐서 피곤한데도 코첼라 페스티벌의 둘째 날 아침에 또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건 팜스프링스 때문이다. 인디오 근처의 이 오아시스 같은 도시는 할리우드 명사들의 별장이 밀집된 곳으로 유명하다.
마이클 스턴이란 아저씨가 운영하는 ‘모던 투어’는 1인당 150달러(약 17만 원)라 좀 비싸긴 하지만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하고 멋진 집에 관심 있다면 해볼 만하다. 그 집들 중엔 프랭크 시내트라가 살던 집, 엘비스 프레슬리가 신혼을 보낸 집도 있는데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외관만큼이나 실내도 독특한 집이 많다. 집집마다 수영장은 기본이다. 프레슬리의 신혼집 안엔 그의 사진과 유품들이 빼곡히 예쁘게 늘어놓아져 있다. 임대도 한다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하단다. 큰돈 벌면 한 번 빌려서 살아보자.
돈 많이 벌면 할 게 또 있다. 코첼라 페스티벌 숙소로 호텔이나 일반 텐트 대신 ‘사파리 텐트’를 잡는 거다. 2인 기준 4박에 7000달러(약 816만 원). 코첼라 3일짜리 VIP 티켓이랑 무제한 무료 음료, 식사, 컨시어지 서비스가 포함됐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가격이긴 하다. VIP 티켓이 있으면 축제장에서 전용 공간, 전용 통로를 이용하고 숙소와 축제장 사이를 무료 카트로 이동할 수 있다니 진짜 돈 많이 벌고 나이 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 나이에도 몰디브 최고급 숙소에서 모히토 한잔 하느니 록 축제 즐기는 게 낫다면. 너라면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Hotel California’ ‘California Dreamin’…. 캘리포니아에는 비싸고 좋은 것만큼이나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도, 음악 이야기도 가득하다. 다음엔 꼭 너랑 같이 여기 음악기행을 해보고 싶다. 시애틀도, 샌프란시스코도 다 이 근처니까. 안녕, Y. 한국에서 캘리포니아 와인 한잔 하자. 내가 깔게. 괜찮다. 이건 3만 얼마짜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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