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부처님처럼 살수는 없어도, 부처님같이 살아가야지…”

  • 동아일보

성전 스님 기고
“부처와 나 사이가 너무 멀다고미리 체념하지 마세요
부처님처럼 살고싶은 마음 하나로 당신은 이미 작은 부처니까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께 무엇을 올릴까 생각하다가 도량에 꽃을 심기로 했다. 산길을 돌아 내려가 시내 꽃집에서 풍성하게 꽃을 샀다. 한 아름 꽃을 담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가 함께 따라왔다. 나는 차창을 내렸다. 바람이 바다의 손길처럼 부드러웠다. 바다와 나 사이의 거리에는 바람이 흐르고 아득한 시간 저편의 부처와 나 사이의 거리에는 법의 향기가 꽃향기처럼 흘렀다.

붓다는 기원전 624년 지금의 네팔 남부 타라이 지방에 자리한 카필라바스투라는 도시국가의 왕자로 태어났다. 붓다는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선언했다. 모든 세계의 고통으로부터 모두를 안락하게 하겠노라고. 이것을 그의 ‘탄생게’라고 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의 삶의 여정에는 끝없는 감동이 있다. 출가를 막는 아버지 정반왕을 향해 던지는 그의 요구는 얼마나 멋진가. “병들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게 해주신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마치 붓다의 육성을 생생하게 듣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하는 요구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고해에 던져진 자신에게 새기는 결연한 다짐이었다.

때로 부처님은 너무 높고 멀게만 느껴진다. 왕자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도 그렇고 그 엄청난 고행을 이겨내는 것도 그렇다. 이 포기와 극복을 가능케 한 것은 그의 원력이었다. 모두의 이상과 안락을 위해 바치는 이 힘이 있어 부처님은 이 세계에 왔고 당당하게 탄생게를 외칠 수 있었다. 중생은 업력에 따라 이 세계에 끌려오고 부처님은 원력에 따라 이 세상에 스스로 온다. 원력은 모든 생명의 공동의 이상을 향한 끝없는 사랑이다.

마침 절 아래 마을에서 신도 두 분이 오셨다. 함께 호미를 들고 법당 아래 계단 좌우와 돌담 위에 꽃을 심었다. 룸비니 동산 프라크샤나무(무우수) 아래서 부처님 태어나실 때 꽃비가 되어 내리던 눈부신 꽃잎과 신선한 바람의 기억을 이 도량에서 다시 만나기를 발원하며 꽃을 심었다. 지극한 마음 탓이었을까. 그 순간 꽃들은 세상에 다시없는 예쁜 모습으로 투영돼 왔다.

어머니가 부처님께 올리던 공양미도 그랬을 것만 같다. 내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을 심는다고 생각하듯이 어머니도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쌀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밤새 뉘를 고르고 그 먼 절까지의 길을 머리에 공양미를 이고 갔을 것이다. 그 청정한 마음의 기쁨을 어머니와 나는 부처님을 통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꽃을 다 심고 난 뒤 신도들의 얼굴에도 꽃물이 든 것만 같았다. 나는 도량 한쪽의 돌 위에 앉아 이 순간을 메모했다. “꽃을 심었어요. 부처님오신날 꽃 들어 맞이하려고 꽃을 심었어요. 꽃들이 환하게 미소 짓는 도량에 부처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꽃 같은 마음으로 살 수는 없어도 꽃을 보며 꽃같이 살아야지 발원하는 이 순간이 행복해요. 부처님처럼 살 수는 없어도 부처님같이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불자인 것이지요. 이상은 때로 허황하고 꿈같지만 그걸 지니고 살아야 해요. 그것이 우리 삶의 힘이 되기 때문이지요. 부처와 나 사이가 너무 멀다고 체념하지 마세요. 부처님처럼 살아야지, 하는 그 마음 하나 있으면 당신은 이미 작은 부처니까요.”

꽃들의 미소가 부드러운 바람에 실려 나비처럼 도량에 떠다니고 있었다.

남해 염불암 주지
#부처님오신날#성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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