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한 수]오픈전, 상금제, 상대선수지명제…참신한 방식 도입 챔피언 13명 배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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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계가를 마친 구리 9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딱 반집이 모자랐다. 그의 표정에 “또 반집인가”라는 아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2012년 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번기 마지막 대국. 이세돌 9단이 구리 9단에게 두 번째 반집승을 거두며 우승하는 순간이었다. 이세돌 9단의 우승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집’만 있으면 됐다.》
동갑내기 친구 구리 9단과의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은 일부러 계획한 것처럼 반집 승을 두 번 거둬 우승컵을 안았다. 둘은 32강 전에서도만나 4패 빅 무승부라는 희한한 대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갑내기 친구 구리 9단과의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은 일부러 계획한 것처럼 반집 승을 두 번 거둬 우승컵을 안았다. 둘은 32강 전에서도만나 4패 빅 무승부라는 희한한 대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세돌 9단으로선 2004, 2007, 2008년에 이어 4번째 우승하며 대회 최다 우승을 달성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결승전은 올해 20주년인 삼성화재배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우승 상금이 3억 원, 준우승 상금이 1억 원으로 증액된 상황에서 열린 17회 대회에서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은 본선 32강에서도 만났다. 당시 두 대국자는 4곳에 패가 나면서 무한 반복되는 상황이 발생해 ‘4패 빅’으로 무승부 처리되는 진귀한 기보를 남겼다. 이어 결승전에서도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며 손에 땀을 쥐게 히는 명승부를 만들어낸 것.

변화와 혁신의 20년


1996년 8월 출범한 삼성화재배는 대회 규모 15억 원, 우승 상금 40만 달러의 세계 바둑사상 최대 규모로 탄생했다. 삼성화재배는 나라별 정상급 기사를 초청하는 대신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오픈전 방식을 도입해 해외기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2001년 6회 대회부터 통합예선을 완전 개방했고, 2004년 9회부터는 상금제(예선 대국료가 없고 본선에 올라갔을 때만 대국료와 상금 지급) 시행으로 세계 기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06년 11회엔 여자조, 2009년 14회에 시니어조(50세 이상)를 신설해 바둑의 균형 발전에도 힘썼다.

2007년 12회 때는 본선 32강에서 추첨 대신 ‘상대 선수 지명제’를 처음으로 도입해 두고 싶은 상대를 직접 고르게 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어 2009년 14회부터 도입한 본선 32강 ‘더블 일리미네이션’ 제도는 한 판만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의 단점을 보강해 두 판을 져야 탈락하도록 함으로써 강자의 초반 탈락을 최소화했다. 또 14회에 세계 10개국 아마추어 기사를 초청하고 꿈나무 후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바둑 보급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는 개막식을 중국에서 개최하며 현지 명사들을 초청해 프로암대회를 가졌고 2013년 18회에는 통합예선에서 진출자 중 일반조를 한 자리 줄이고 대신 유럽과 미주 8개국의 대표 선수들이 참가하는 월드조를 편성해 명실상부한 세계 바둑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삼성화재배는 ‘오픈전’ ‘상금제’ ‘상대 선수 지명제’ ‘더블 일리미네이션’ 등 참신한 방식을 최초로 도입해 기전 운영의 모범을 보여줬다.

화려한 역대 우승자


초대 챔피언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 유창혁 9단과 요다 9단은 당시 응씨배와 삼성화재배에서 각 40만 달러 씩 80만 달러의 우승상금을 놓고 대결을 펼쳤다. 응씨배는 유9단이 이겼으나 삼성화재배에선 다 이긴 바둑을 막판 실족으로 놓쳤다.
초대 챔피언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 유창혁 9단과 요다 9단은 당시 응씨배와 삼성화재배에서 각 40만 달러 씩 80만 달러의 우승상금을 놓고 대결을 펼쳤다. 응씨배는 유9단이 이겼으나 삼성화재배에선 다 이긴 바둑을 막판 실족으로 놓쳤다.
삼성화재배는 매년 아마 예선에 1000여 명, 통합예선엔 300여 명이 출전해 세계 기전 가운데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삼성화재배는 20회 동안 13명의 우승자를 배출했다. 1회 대회의 챔피언은 ‘열도의 사무라이’ 요다 노리모토 9단이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 한동안은 한국의 독주였다.

이창호 9단은 2회 대회부터 3년 연속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메이저 세계대회의 3연속 우승은 아직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유창혁 조훈현(2회) 조치훈 이세돌 9단이 잇따라 우승해 한국 출신 기사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0회 대회 때야 비로소 뤄시허 9단이 중국 기사로선 처음으로 이 대회에서 우승해 물꼬를 텄다. 창하오 쿵제 구리 9단도 중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이세돌 9단은 2004년에 이어 2007, 2008, 2012년에 우승해 대회 최다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원성진 9단은 2011년 입단 13년 만에 첫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대기만성의 전형을 보여줬다.


2013년엔 중국의 떠오르는 ‘90후’(1990년대 후반생) 탕웨이싱 9단이 결승에서 이세돌 9단의 5번째 타이틀 획득을 저지하며 세계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중국은 그해 열렸던 6개의 메이저 세계대회를 독식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한국 기사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2014년엔 김지석 9단이 디펜딩 챔피언 탕웨이신 9단을 2-0으로 셧아웃시키며 데뷔 11년 만에 첫 세계 제패의 기쁨을 맛봤다. 지난해엔 혜성처럼 등장한 커제 9단이 우승하며 메이저 세계대회 타이틀 3개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神의 한 수#바둑#삼성화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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