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마들렌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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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고급의 감성을 필요로 하는 상품들에 곧잘 패러디된다. 프랑스의 한 초콜릿 회사는 ‘잃어버린 미각을 찾아서’라는 구절을 소설 제목 인쇄체 그대로 로고 디자인에 쓰고 있다. 한국 영화팬들에게 인기 있는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 죽은 애인이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학생에게 도서관에 반납해 달라고 부탁하던 책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일본어판이다. 시간 속으로의 탐구라는 책 내용도 그렇지만, ‘잃어버림’이니 ‘시간’이니 하는 것들이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의 생과자 마들렌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이 소설 덕분이다.

마들렌의 모티프는 총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소설의 아주 중요한 단초이다. 스쳐 지나가듯 얼핏 떠오른 미세한 감각에서부터 세심하고 꼼꼼한 기억의 복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오랜만에 어머니의 집을 찾은 아들은 어머니가 끓여준 따뜻한 홍차에 통통한 조가비 모양의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 모금 마신다. 과자 조각을 적신 홍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마르셀의 온몸을 휘감는다. 이 강렬한 기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두 모금, 세 모금 주의 깊게 음미하는 동안, 갑자기 그의 몸 안에서 마치 깊은 심연에 닻을 내린 어떤 것이 서서히 위로 올라오듯 미세한 떨림이 감지된다. 아, 그건 고모와 관련된 기억이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고모에게 인사를 하러 갔고, 고모는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주곤 했다. 그때의 미각과 지금의 미각이 서로 공명(共鳴)을 일으키면서, 고모가 살던 오래된 회색 집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모든 것들이 마치 물에 색종이를 넣으면 온갖 모양의 꽃이 피어오르는 일본 종이놀이처럼 찻잔에서 솟아올랐다. 정원의 꽃들, 이웃집 스완 씨의 거대한 저택, 순박한 사람들의 작은 집들, 아름다운 성당 건물들이.

그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무의미해졌다. 자신의 보잘것없고 유한한 삶조차 더 이상 비루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감동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흔히 해석한다. 그러나 홍차 잔에서 떠오른 콩브레가 옛날 그 당시의 콩브레일까? 우선 지금 마르셀이 차를 마시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가 어린 시절에 실제로 살았던 과거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들렌이라는 공통 감각에 의해 떠올린 과거의 시간이 있다. 이렇게 떠올려진 과거의 콩브레는 엄밀히 말해 그 옛날 그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던 그 콩브레는 아니다. 지금 마르셀이 되찾은 과거는, 실제로 존재했던 과거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한없이 깊고 먼 과거이다. 현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도 아닌, 우리의 지각이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그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순수 과거이다.

이 절대적 순수 시간을 질 들뢰즈는 ‘근원적 시간’이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이런 근원적 시간을 되찾아주는 것은 예술작품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예술작품뿐이랴. 영화나 대중가요가 어느 순간 문득 우리에게 세상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줄 때 우리는 ‘근원적 시간’에 살짝 도달해 있는 것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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