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석의 시간여행]입춘과 겹쳤던 그해 설날은 쓸쓸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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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여년 전 설날

1935년 동아일보 2월 5일자에 실린 설날 풍경.
1935년 동아일보 2월 5일자에 실린 설날 풍경.
그날은 입춘이었다. 그리고 설날이기도 했다. 1924년의 2월 5일.

한 해의 첫 절기인 입춘과 한 해의 첫날인 설날이 겹친 터라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글씨가 집집마다 내걸린 가운데 차례를 올리고 세배를 하고 떡국이 돌았다. 동지팥죽 먹을 때부터 설날을 기다린다는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설빔을 차려입었다. 집안 행사가 끝나면 동네 한 바퀴 세배를 도는 순례가 이어졌다. 그날의 서울 풍경은 어땠을까.

‘복조리 파는 소리와 악귀 쫓는 딱총 소리에 음력 섣달 그믐밤을 지새우고 초하룻날이 오자 서울 천지는 일시에 색동저고리 분홍치마의 꽃밭을 이루었다. 종로 일대 상가는 3분의 2 이상 문을 닫았고, 거리마다 고무풍선과 장난감 파는 시장이 열려 세뱃돈을 들고 소년소녀들이 어여삐 모여들었다.’(동아일보 1924년 2월 6일자)

거기까지였다. 학생들은 평소처럼 학교에 갔다. 음력설은 공휴일이 아니어서 정상 수업이었다. 그래도 관습을 어찌할 수 없었던지 오후 수업은 적당히 생략하고 조기 방과하는 분위기였다. 직장인은 출근하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면 공휴일인 일본식 신정에 대비하여 구정이라 불리는 음력설은 모처럼 입춘과 겹쳐 반짝 성황인 듯 보였을 뿐, 실은 반쪽 명절이라는 점에서 예년과 별 차이가 없었다. 같은 날 신문의 또 다른 기사가 그 내막을 전한다.

‘어제 설은 정말 쓸쓸하였다. 마침 입춘이라 봄날같이 날씨가 화창하여 세배하러 돌아다니기에도 매우 편리하였으나 세배꾼도 별로 많지 않은 듯했고, 새 옷 입은 아이들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아 거리나 가정이나 모두 쓸쓸한 바람이 돌 뿐이었다.’

그믐날까지 남대문과 배오개 시장에는 설빔 반찬거리가 수북이 쌓이고, 종로 대로변에 허리띠 대님 댕기가 오색 찬란히 바람에 나부끼며 포목점 진열대에 주단이 휘황하게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렇지만 입춘대길의 설날은 한산하고 적막하게 지난 모양이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로 시작하는 동요 ‘설날’을 최초의 창작동요 작곡가 윤극영이 머지않아 만들어 낼 무렵이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쯤은 모든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마음 편하게 노는 것. 우리의 살림은 일 년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그 설 놀이조차 만족히 할 수가 없다. 해마다 우리의 살림은 이렇게 졸아들기만 하고 늘어갈 기대가 도무지 보이지 아니한다.’ 만성 빈궁의 살림살이에 명절조차 전통 풍습대로 못 지내는 형편을 개탄함이었다.

설날인 듯 설날 아닌 이날의 울적한 심사를 대변하듯 슬픈 변고까지 겹친 날이었다. 오전 2시에 낙원동 어느 집에서 불이 나 잠자던 어린아이 둘이 희생되었다. 그 참사가 설날 기사들을 밀어내고 신문의 사회면 머리를 차지했다. 골목길이 좁아 소방대 활동이 여의치 못했던 점도 안타까웠지만 불이 난 원인이 사람들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날이 새면 입을 아이들의 설빔을 어머니가 밤늦도록 다리고, 불이 다 꺼지지 않은 숯불 다리미를 마루에 그대로 두었다가 불이 번진 것이라 했다.

설날에조차 서울 사람들의 마음에 깃든 그늘이 있었다면 그것은 물질적 가난과 정치적 억압 때문이었다고 할 것이다. 물자는 귀하고 전통은 단절된 상황. 일상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설날이라고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듯한 92년 전 풍경이다.

“눈 쌓인 정월 길을 밟으며 누이와 손목을 잡고 할머님 댁에 가서 되지도 않는 세배를 하면 둘러앉은 사람들은 하하 웃음소리를 낼 때, 나는 부끄러워 뛰어나오려면 할머님은 귤과 돈을 손에 쥐여주어 나는 더 큰 기쁨이 없었다.”

1930년대에 극작가로 활약하게 되는 평양 태생의 주영섭이 어린 시절을 회고한 구절이다. 일제 초기만 해도 아직 덜 훼손된 설날의 전통이 수채화처럼 드러난다.

세월이 흘러 설날은 공식 설로 되돌아 왔다. 90여 년 전 그때 사람들의 소원대로 설을 보내게 된 지금 사람들은 매일이 설날 같은 먹을거리에 둘러싸여 지내며 연휴 기간에 국내와 국외를 이동한다. 전통의 향수와 전통의 구속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고향이라는 성지의 순례를, 때로는 인연이라는 족쇄로부터의 탈출을 벌인다. 그러면서 묻는다. 우리는 설날로 인해 행복한가.

집과 동네를 멀리 떠나지 않고 설을 맞은 궁핍한 시기의 사람들. 그들의 설날에 깃들었던 구속과 그늘에서 이제 우리는 벗어난 것일까. 한 세기에 걸쳐 우여곡절을 겪어온 설날이 지금 우리 곁에 머물며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입춘. 또 설날이 돌아온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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