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을 사랑한 가장 인간적인 의사 올리버 색스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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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On The Move): 올리버 색스 자서전/올리버 색스 지음·이민아 옮김/
496쪽·2만2000원·알마

올리버 색스는 신경 장애 환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 환자들이 음악에 반응하는 것에 주목한 그는 음악과 뇌의 관계를 연구한 저서 ‘뮤지코필리아’를 펴냈다. 뇌 모형을 든 색스의 어깨 너머로 피아노가 보인다. 동아일보DB
올리버 색스는 신경 장애 환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 환자들이 음악에 반응하는 것에 주목한 그는 음악과 뇌의 관계를 연구한 저서 ‘뮤지코필리아’를 펴냈다. 뇌 모형을 든 색스의 어깨 너머로 피아노가 보인다. 동아일보DB
“두렵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지난해 2월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며 올리버 색스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본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2005년 눈에 생긴 암(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됐다고 했다. 숙연함이 몰려왔다.

생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말하는 이는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산 것일까. 그해 4월 자서전 ‘온 더 무브’가 출간됐고, 넉 달 후 그는 82세로 눈을 감았다.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는 신경 장애 환자들의 사연을 담은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깨어남’ ‘편두통’ 등을 펴내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책은 신경병 환자가 단순히 정신병자가 아니라 감각 이상으로 그들만 보고 느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는 정신과 신경을 분리해 치료하던 당시 관행을 깨고 환자의 인생에 집중하며 두 분야를 연결해 치료하는 데 앞장섰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독자를 빨아들이는 글쓰기 능력, 그리고 숨 가쁠 정도로 꽉 찬 그의 삶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보여준다.

유대인 의사 부부의 네 아들 중 막내인 그는 상처와 소외로 자주 움츠러들었다. 10대 때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차갑게 내뱉는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서 버림받고,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형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은 평생 죄책감으로 그를 짓눌렀다.

아파 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더 예민해지고 이해하려 애쓰게 된다. 그가 환자를 기계적인 치료 대상이 아니라 역사를 가진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은, 시간이 흐른 후 면도날 같았던 어머니의 말을 정신분열증과 동성애로 두 아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탄식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결을 같이한다.

왕성한 호기심은 그를 숱한 분야의 모험으로 이끌었다. 화학, 생물학, 해부학 등을 탐구하고 모터사이클, 스쿠버 다이빙, 역도, 여행, 음악에 심취했다. 1000권이 넘는 일기를 쓰고 수영을 하다가도 문장이 떠오르면 뛰쳐나와 기록할 정도로 메모광이었다.

책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의학계의 거장이기에 앞서 한 인간인 그를 마주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을 위협하던 차를 쫓아갔다 10대임을 알고는 맥이 빠져 돌아서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무리하게 역기를 들어올리는 치기 어린 청년이 있었다. 의도야 어찌됐든 환자를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게 세상에 드러낸 것을 미안해하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사람은 의학계에서 진지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시무룩해한다. 수두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자신이 세계 최초의 급성피부경화증 환자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모습에는 웃음이 터진다.

그의 팬이라면 여러 책이 탄생했던 ‘산고의 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책을 접해 보지 않은 이에게는 그가 낳은 ‘자식’들을 만나보고 싶게 만든다.

시인 친구가 쓴 동명의 시에서 따온 제목처럼 그는 평생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그토록 여유롭고 따스하게 삶을 관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2015년 ‘올해의 명저’로, 아마존은 2015년 5월 ‘이달의 책’으로 선정했다.

:: 올리버 색스(1933∼2015) ::

△영국 런던 출생
△옥스퍼드대 퀸스칼리지 의학 학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신경과 레지던트
△미국 베스에이브러햄병원 신경과 전문의
△미국 알베르트아인슈타인의과대, 뉴욕대, 컬럼비아대 교수
△록펠러대 ‘루이스 토머스 상’ 수상
△영국 커맨더 훈장 수훈

:: 저서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색맹의 섬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편두통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온 더 무브#올리버 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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