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스며든 ‘학벌주의’ 치부 고발

  • 동아일보

신상호 설치전 ‘사물의 추이’

신상호의 ‘Whistle blower 1’. 작가가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나무 배 뒤 벽면에 앞으로 기울어져 침몰하는 배 그림을 도자로 제작해 걸었다. 금호미술관 제공
신상호의 ‘Whistle blower 1’. 작가가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나무 배 뒤 벽면에 앞으로 기울어져 침몰하는 배 그림을 도자로 제작해 걸었다. 금호미술관 제공
로댕이나 피카소가 명문대를 졸업하고 거장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미술을 업으로 삼으려는 이에게 대학 졸업장은 필수 조건이다. 졸업의 열매는 ‘소속’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에서 불거진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대 출신들의 대립은 ‘미술’ 외의 다른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미술계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신상호 설치전: 사물의 추이’는 미대 교육의 폐단을 작품과 더불어 적나라한 직언으로 지적한다. 작가 신상호 씨(67)는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모교의 미대 학장을 지낸 뒤 2005년 퇴임했다. 논의 방식에 대한 호오(好惡)는 갈리겠지만, 못 본 척 외면하는 제 몸의 치부 같은 문제를 전시장에 고스란히 드러낸 시도가 흔해빠져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는 도예를 중심축에 두고 다양한 오브제를 끌어들여 표현과 주제를 확장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4개 층을 오르며 작가가 수집한 사물이 도자와 결합해 새로운 연상을 도출해내는 추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됐다.

1층과 지하에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무기와 장신구, 중국 명대의 도자기, 무쇠 모루, 전쟁포로를 운송하는 데 썼다는 창살차 등 갖가지 기물을 늘어놓았다. 2층 벽면에는 유럽 어느 거리에서 떼어 낸 듯 보이는 낡은 철제 창틀을 프레임 삼아 도자기 패널을 채색해 끼워 넣은 작품이 걸려 있다. 창살 겉면에 촘촘히 박아 넣은 도자기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는 건 부질없다. 재료를 원형에서 벗어나도록 변화시킨 작업의 흔적만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3층은 양상이 다르다. 헝클어져 뒤얽힌 교실 의자 더미, 앞으로 기울어진 커다란 배, 포탄에 여러 차례 뚫려 비틀어진 철판. 재료를 가공한 방법은 아래층과 같지만 전하려는 바는 하나하나 또렷한 문장의 형상을 갖췄다. 관람을 끝낸 관객은 홍대 미대의 문제를 묻는 총동문회 설문지를 받아 든다. 흥미로울 수도 불편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무 의미 없다고 지나쳐 버리기는 어렵다. 02-720-5114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신상호 설치전#사물의 추이#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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