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의 역사에서 모든 시기가 특별하고 위대하지만 1970년대 초반은 ‘젊은이들의 시대’였다는 데서 각별했습니다. 케르테스 이슈트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앙드레 프레빈(이상 1929년생), 로린 마젤과 카를로스 클라이버(이상 1930년생),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년생), 오자와 세이지(1935년생), 주빈 메타(1936년생) 같은 30대 중반∼40대 초반의 젊은 지휘자들이 새로운 음반들을 앞다투어 쏟아놓았습니다. 당시 레코드 잡지의 지면에서 느껴지던 펄펄 뛰는 생동감이 눈에 선합니다.
이달 13일 타계한 로린 마젤을 생각하며 그 세대의 황혼을 바라봅니다. 1973년 젊은 나이에 사고로 타계한 케르테스에 이어 2004년 클라이버, 그리고 올해 아바도와 마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클라이버와 마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꼭 10년 차이로 타계한 점이 공교롭습니다. 클라이버는 2004년 7월 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 여러 가지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마젤이 여러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을 거치는 동안 클라이버는 큰 악단들을 객원지휘하며 지냈습니다.
마젤은 엄청난 분량의 레코딩을 쏟아놓았지만 클라이버가 남긴 음반은 적습니다. 그래도 유연한 프레이징(분절법)과 악기 간의 섬세한 밸런스, 천부적인 ‘음악적 반사신경’으로 품격 높은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두 사람이 공통됩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강철 같은 주관이 드러나는 개성 넘치는 연주를 자주 선보였습니다. 2004년 내한한 마젤에게 “당신의 연주가 주관주의적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마젤은 “지휘 자체가 주관주의적 작업이다. 작곡자가 만든 악보의 결과에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이 지휘자”라고 답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약진하는 젊은 지휘자를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스타보 두다멜(1981년생), 야니크 네제세갱(1975년생), 블라디미르 유롭스키(1972년생)를 그 대표주자로 꼽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상에는 이들이 갓난아기였던 시절의 젊은 지휘자들만큼 ‘펄떡거리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오늘날 음반시장이 새로운 연주를 활발히 소개하지 못하고, 옛 거장의 연주를 새롭게 포장해 내놓는 데 더 열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