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와인을 평생의 사명으로, 나다니엘 남작

  • 동아일보

[명가의 와인을 말하다]<2>바롱 나다니엘 뽀이약

로칠드 가문의 헌정와인 헤리티지 레인지. 가운데 병이 바롱 나다니엘 남작의 헌정와인인 바롱 나다니엘 뽀이약.
로칠드 가문의 헌정와인 헤리티지 레인지. 가운데 병이 바롱 나다니엘 남작의 헌정와인인 바롱 나다니엘 뽀이약.
와인의 라벨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 바롱 나다니엘이 바로 그런 와인이다. 라벨에 그려진 무심한 듯 부드러운 모습의 초상이 나다니엘 남작이다. 나다니엘 남작(1812∼1870)은 세계적인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가의 사람이었다. 와인의 세계에서는 보르도 특 1등급 와인 5개 중 2개가 로스차일드(불어: 로칠드)가의 소유이다. 바로 샤또 무똥 로칠드와 샤또 라피트 로칠드이다.

샤또 무똥 로칠드의 15주년 기념 빈티지 라벨.
샤또 무똥 로칠드의 15주년 기념 빈티지 라벨.
나다니엘은 로칠드가의 2세대로 5형제 중 런던으로 이주하여 19세기 영국 및 유럽의 경제계를 장악했던 나단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던 작은아버지의 딸인 샤를로트와 결혼하여 파리에서 살게 되면서 영국 귀족들과 프랑스 귀족들의 생활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와인 생산국인 프랑스에서는 19세기 중엽 산업혁명과 정치적인 변혁으로 큰돈을 벌게 된 부자들이 와이너리를 소유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그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자신의 와인을 내놓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나다니엘 남작은 당시의 시류를 따라 가문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1853년 보르도 뽀이약의 샤또 브란느 무똥을 매입했고 샤또 무똥 로칠드라고 명명했다. 15년 후 장인이 샤또 라피트를 매입해 샤또 라피트 로칠드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샤또를 매입한 2년 후인 1855년 보르도 등급체계가 발표되었고 샤또 무똥 로칠드는 1등급이 아니라 2등급이 되었다. 필시 영국인이 소유주라는 것이 이유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다니엘 남작은 ‘1등은 될 수가 없었고, 2등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나는 무똥이다’ 라는 어록을 남겼다. 나다니엘 남작의 염원은 1973년 4대손인 필립 남작에 의해 1등급으로 승격되며 118년 만에 이루어졌다.

바롱 필립 드 로칠드는1924년 역사상 최초로 와인의 샤또 병입을 도입하여 보르도 특급 와인의 품질을 보장하는데 기여했고, 1930년에는 최초의 현대적인 보르도 브랜드 와인, ‘무똥 까데’를 생산했다. 필립은 1945년부터 샤또 무똥 로칠드의 라벨을 매해 유명한 예술가들에게 의뢰하여 와인 라벨에 새로운 세계를 열었으며 샤또 무똥 로칠드의 컬렉션은 명화의 컬렉션이기도 하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샤또 무똥 로칠드의 라벨에서 바롱 나다니엘은 2번 등장한다. 1953년 샤또 무똥 로칠드 매입 100주년 기념 빈티지에서는 중앙의 작은 초상화로, 2003년 150주년 기념 빈티지에서는 샤또의 매매 계약서를 바탕으로 나다니엘 남작의 전신사진을 볼 수 있다.

특1 등급 와인인 샤또 무똥 로칠드의 2개 빈티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나다니엘 남작이 대중들에게 더 친숙해진 것은 5대손이자 현 사주인 필리핀 드 로칠드 남작부인이 2000년대에 ‘헤리티지 레인지’라는 일련의 헌정 와인들을 생산하면서부터다. 남작부인은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5종의 와인을 만들었다. 여자 조상에게는 그라브 화이트 와인과 소테른 스위트 와인을, 그리고 남자 조상에게는 3개의 레드 와인(메독, 쌩떼밀리옹, 뽀이약)을 헌정했다. 그중에서 와인 가문의 기반이 된 보르도 최고의 와인 명산지, 뽀이약은 당연히 나다니엘 남작에게 돌아갔다. 바롱 나다니엘 뽀이약은 샤또 무똥 로칠드의 포도로 생산되는 3번째 와인이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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