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가도 변함없는 ‘열아홉 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7일 03시 00분


가수 데뷔 55주년 전국순회공연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올해 73세인 가수 이미자는 “전통가요를 이어가고 싶어 안간힘을 쓰다 간 사람, 그걸 애걸복걸하고 무지하게 바랐던 사람으로만 기억됐으면 한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올해 73세인 가수 이미자는 “전통가요를 이어가고 싶어 안간힘을 쓰다 간 사람, 그걸 애걸복걸하고 무지하게 바랐던 사람으로만 기억됐으면 한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미래의 인류가 타임머신을 발명했는지에 관해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가수 이미자는 타임머신 같다. 그의 노래를 타면 반세기 전 피란길로, 붉게 우는 동백섬이나 맘속까지 까맣게 탄 흑산도로, 이름 모를 섬마을이나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 진 산골로 떠날 수 있다. 질박하지만 영롱한, 노래의 음률을 타고 넘는 그 애련한 목소리에 현대과학이 모르는 비밀의 주파수가 숨었을지 모를 일이다. 》

2일 오후 서울 중구 동호로에서 ‘시간여행자’ 이미자를 만났다. 우리 나이로 열아홉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지 55년 됐다. 바깥 날씨처럼 화사한 흰 정장 상의에 단추를 맨 위까지 채운 그는 신인가수 같았다. 이미자는 “말초적인 트로트만 남고 전통가요의 맥이 끊겨 너무 속상하다”고 했고, “수많은 히트 곡이 금지곡이 됐던 한은 무덤까지 가져갈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55년 맞이 전국순회공연 초대 손님으로 독일인 트로트 가수 지망생인 로미나를 세운다. 그게 기쁘면서도 씁쓸하다고 했다.

이미자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상반기만 해도 경주, 춘천, 고양, 대구, 부산, 성남, 수원을 돌며 55주년 기념 무대를 꾸민다.(문의 1566-2505) 최근까지 1년에 20회 넘는 콘서트를 전국을 돌며 해온 그다.

―건강은 어떠세요.

“특별히 불편한 데는 없어요. 50주년 때, 말은 안 했지만 저 나름으론 마지막이란 생각에 제 음악 인생을 정리한 기념앨범을 내고 신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은’도 담은 거예요. 그건 제 마지막 신곡이었어요.”

―가창력은 아직 자신 있으시죠.

“힘에 부치죠. 이제껏 쌓은 경력을 자칫 잘못해 다 무너뜨릴까봐 정신력을 모아서 하는 거죠. (공연은) 관객과의 약속이니까.”

―목소리는 그대로잖아요. 비결은….

“공연 전날은 과식을 피해요. 특별히 목을 위해 먹는 약도 없고. 평범하고 규칙적인 생활이죠. 매주 성당에 나가고….”

―후계자로 꼽는 후배가 있나요.

“없어요. ‘트로트의 여왕’이라 불리지만 그 소리가 전 너무 싫어요. 요즘 트로트가 빠른 템포에 유치한 가사를 붙여 전통가요를 흩뜨리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조용필 씨는 지난해 ‘이제는 한이 사라진 시대이고, 거기에 발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창법도 바꿨다’고 하던데요.

“자기계발로 세대와 발맞추는 조용필 씨는 칭찬해주고 싶어요. 저는 가요계 선배로서 흐름을 지키고 싶어요. 저 혼자 안간힘 쓰지만 저의 대가 끝나면 전통가요는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로미나 씨가 초대가수로 나온다고요.

“우리 아들이 보여준 유튜브 영상으로 ‘동백아가씨’를, KBS ‘가요무대’에서 ‘아씨’를 부르는 걸 들었는데 너무 순수하게 잘 불러요. 가요의 매력이 해외에도 알려졌다는 게 기쁘지만 한편, 국내에 후계자가 없다는 게 씁쓸하죠.”

―엘레지의 여왕의 개인적인 한은 뭔가요.

“뚜렷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1960년대 대부분의 노래가 금지곡이 돼서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죠. 그 한을 말하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땅에 묻힐 때까지도 못 잊을 거예요.”

―가장 목이 메는 노래는 뭔가요.

“‘내 삶의 이유 있음을’(2009). 50주년 때 목이 메서 3일 공연 내내 제대로 못 불렀어요.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이었지만/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하는 부분. 하지만, 이번엔 자신 있어요.”

“60주년 기념공연도 기대하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미자는 긴 시간여행의 끝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이를테면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같았다.

“전 이제 더 바랄 건 없어요. 55년간 노래할 힘을 준 팬들에게 감사드려요. 만약 제게 내일이 없대도 지금 닥치는 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이것뿐이에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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