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生不死’ 언데드 코드, 한국 주류문화에 침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6일 03시 00분


언데드 캐릭터 계보
언데드 캐릭터 계보
《 외계인, 뱀파이어,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좀비. 죽은 자도 산 자도 아닌 제3의 존재인 ‘언데드(Undead)’ 캐릭터가 한국 대중문화의 주류로 침투하고 있다. 과거에는 ‘B급 문화’의 산물로 치부되던 이들 언데드가 해외에 이어 국내에서도 주류 문화에서 인간과 사랑, 우정을 나누는 인기 코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     
     

○ 따뜻한 맘을 지닌 섹시한 야수

2일 SBS ‘인기가요’ 1위에 오른 선미의 노래 ‘보름달’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연인의 목덜미를 물어 영생의 치유를 주는 뱀파이어 여인의 모습을 가사와 안무,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JYP엔터테인먼트의 황준민 홍보팀장은 “청아함과 관능미를 함께 갖춘 가수의 이미지와 공통분모를 지닌 착하고 따뜻한 뱀파이어를 그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최고 인기를 누린 남성그룹 엑소는 ‘늑대와 미녀’ ‘으르렁’에서 늑대인간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검은 그림자 내 안에 깨어나 널 보는 두 눈에 불꽃이 튄다/그녀 곁에서 모두 다 물러나 이젠 조금씩 사나워진다/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대’라는 가사에서 이들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겠다고 선언한다. 깔끔한 외모와 대조적인 힙합 스타일의 강렬한 안무를 동시에 선보여 변신성을 강조한다. 이는 ‘외계의 미지 행성에서 날아온 초능력을 지닌 12명의 아이돌’이란 엑소의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진다.

댄스 가요에서 일어난 ‘언데드’ 붐은 그 소비층인 10, 20대 여성 사이에서 일어난 영화 ‘트와일라잇’(2008년) ‘늑대소년’(2012년) ‘웜바디스’(2013년)의 인기와 맞물려 있다. ‘언데드 청춘물’이 노래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온 도민준(김수현)은 인간과 같은 모습에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이다. 외계인은 지구를 침공하는 위협적인 존재(‘화성에서 온 침입자’·1953년)에서 지구를 지키는 영웅(‘슈퍼맨’·1978년)으로 격상됐다. 이후 인간과 친구가 되고(‘E.T.’·1982년) 때로 사랑을 나누며(‘아바타’·2009년) 친숙하게 다가왔다.

공연계에선 프랑켄슈타인이 뜨고 있다. 서울 충무아트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18일 막이 오른다. 연출가 왕용범 씨는 “인간의 이기심,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렸다”고 밝혔다. 10월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될 번역극 ‘프랑켄슈타인’의 연출가 조광화 씨는 “묵시록적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영원히 변주될 만한 소재”라고 말했다.

○ 이종 장르 교배의 산물?

전설적 존재였던 언데드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19세기 이후 소설로 재탄생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동명 소설(1818년) 속 이름 없는 괴물로 태어났고, 뱀파이어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년)에 등장했다. 프랑켄슈타인과 뱀파이어가 결합한 좀비는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1954년), 조지 로메로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년)을 통해 대중화됐다. 냉전시대 내내 언데드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를 상징하거나 무분별한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추악한 괴물로 형상화됐다.

이런 언데드가 주류문화로 진입한 것은 언데드가 등장했던 스릴러를 비롯해 멜로, 액션 장르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언데드가 로맨스 장르로 들어오면서,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가졌지만 지켜줄 뿐 해치지 않는 금욕적 존재로 이행했다”면서 “우직한 남성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초식남의 매력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인 젊은 여성을 강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소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려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을 배척하려는 심리가 강했지만 점차 나와 다른 이들과 공존하려는 시도가 많아지면서 문화 콘텐츠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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