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佛 공쿠르상 올해 수상작 ‘오르부아 라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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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돈이 된다” 사기극에 뛰어든 참전 군인들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 4개월간 지속된 제1차 세계대전.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탄, 비행기에서 뿌려대는 폭탄, 스멀스멀 퍼지는 독가스…. 900만 명이나 전사한 이 끔찍한 전쟁은 기존 전쟁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된 ‘오르부아 라오(Au revoir l`a-haut)’의 배경도 1차 대전이다. 작가인 피에르 르메트르(62·사진)는 유명 범죄 스릴러 작가. 그는 처음으로 장르소설에서 벗어나 순수문학 작품을 발표해 공쿠르상을 거머쥐었다. 6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반전과 서스펜스, 블랙유머로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시점은 종전이 며칠 남지 않은 1918년 11월 2일. 병사들은 더이상 싸울 의욕을 잃었다. 그러나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인 중위 프라델은 전쟁영웅이 될 마지막 기회를 찾고 있다. 그는 독일군을 일부러 자극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이 책의 첫 50페이지는 도살장으로 변한 참호전의 모습을 묘사한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세 사람. 은행원 출신 병사 알베르와 몽상가이자 화가인 에두아르, 그리고 프라델 중위다.

전쟁이 끝나고 작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쟁은 현재진행형보다 기억이 더 비극적인 법.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알베르와 에두아르는 파리로 돌아와 전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둘은 곧 깨닫는다. 전후 프랑스는 죽은 사람을 영웅화할 뿐 살아서 돌아온 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프랑스에서 1차 대전은 보불전쟁(1870∼1871)에서 독일에 당한 수모를 되돌려준 복수 전쟁이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전쟁영웅을 추모하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병사들의 시체 수만 구가 발굴됐고, 거대한 군인묘지가 조성됐다. 제대한 프라델 중위는 병사들의 시체를 발굴해 운반하고, 관과 묘지를 밀매하면서 막대한 돈을 번다. 그는 “전쟁은 진행 중이거나, 끝났거나 모두 돈이 된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여기에 주인공 알베르와 에두아르도 희대의 사기극에 뛰어든다.

작가인 르메트르는 수상 소감에서 “범죄소설, 대중소설의 문체가 인정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올해 110주년을 맞은 공쿠르상의 상금은 10유로(약 1만4400원)짜리 수표가 전부다. 그 대신 ‘올해의 공쿠르상 수상작’이란 빨간 띠지는 평균 40만∼90만 부 이상의 판매량과 함께 작가에게 커다란 명예를 안긴다.

이 책의 제목은 ‘저 높은 곳이여, 안녕’이란 뜻. 제목처럼 전후 프랑스 사회의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정치사회적 부패가 신랄하게 풍자된다. 내년은 1차 대전 발발 100년이 되는 해.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빠진 채 무한경쟁에 휩쓸려가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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