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킬힐, 건반 사이를 헤집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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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투아 지휘 로열 필하모닉 & 피아니스트 유자 왕 협연 ★★★★

지난달 29일 주황색 미니드레스와 킬힐 차림으로 내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유자 왕은 커튼콜 때 세련된 옷차림과 색다르게 거의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깜찍한 ‘폴더 인사’로 더 많은 갈채를 끌어냈다. 크레디아 제공
지난달 29일 주황색 미니드레스와 킬힐 차림으로 내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유자 왕은 커튼콜 때 세련된 옷차림과 색다르게 거의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깜찍한 ‘폴더 인사’로 더 많은 갈채를 끌어냈다. 크레디아 제공
스위스 지휘자 샤를 뒤투아가 이끄는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내한 공연(29,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졌다. 그런데 조금은 부당하게도, 당초 이 공연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악단이나 지휘자가 아닌 협연자, 특히 29일 공연의 유자 왕(중국명 왕위자·王羽佳)에게로 모아졌다.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극찬했던 이 젊은 중국 피아니스트는 유튜브를 통해 알려진 현란한 테크닉과 파격적인 무대의상으로 유명하다. 이날도 주홍색 미니드레스에 1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킬힐 차림으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렇다면 연주는?

유자 왕은 과연 특출한 재능과 감각의 소유자였다. 특히 쇼팽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을 중심으로 들려준 감칠맛 나는 터치와 영롱한 음색, 참신한 시정을 머금은 감성적인 표현이 돋보였다. 그러나 쇼팽이 그의 역량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는 자극적인 소리를 피하려는 듯 내내 조심스러운 기색을 내비쳤고, 그것은 어느 정도 답답하고 불명료한 인상으로 귀착됐다.

흥미롭게도 그는 빠른 패시지일수록 편안해 보였는데, 속주가로 유명한 발렌티나 리시차(우크라이나 여류 피아니스트)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장기인 리스트나 프로코피예프가 아니라 쇼팽을 고른 이유는 뭘까. 어쩌면 이날 우리는 이 젊은 스타의 과도기를 목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명한 이라면 뒤투아와 로열필의 조합에 주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프랑스 음악 스페셜리스트인 뒤투아가 프랑스 근대 관현악의 두 정점인 드뷔시의 ‘바다’와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지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영국 악단이 연주하는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이라는 흐뭇한 덤도 있었다.

뒤투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적극적이고 주도면밀한 손길로 선명한 색채와 풍부한 생동감을 시원스럽게 펼쳐 보였다. ‘핑갈의 동굴’은 채도 높은 수채화이자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였고, ‘바다’는 총천연색의 빛깔과 살아 숨쉬는 유동감, 다이내믹한 운동성으로 가득한 파노라마였으며,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매혹적 환상과 화려한 광란을 아우른 태피스트리였다.

다만 로열필의 앙상블은 아쉬움을 남겼는데, 특히 호른이 종종 들려준 부정확한 음과 타악기의 자극적인 음색이 거슬렸다. 또 유명한 현악 파트의 경우 화사한 색감과 유려한 질감은 명불허전이었지만, 최고의 악단들이 가진 중량감과 응집력은 다소 부족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로열 필하모닉#유자 왕#샤를 뒤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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