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마중나간 예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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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역사 ‘대중의 새 발견’ 전

전통 회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권기수 씨의 풍선 숲과 하트 문양을 담은 만국기로 만든 강영민 씨의 열기구 작품. 옛 서울역사를 복원한 ‘문화역 서울 284’가 기획한 ‘대중의 새 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의 전시작품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전통 회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권기수 씨의 풍선 숲과 하트 문양을 담은 만국기로 만든 강영민 씨의 열기구 작품. 옛 서울역사를 복원한 ‘문화역 서울 284’가 기획한 ‘대중의 새 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의 전시작품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정오 무렵의 서울역 광장. 한쪽에선 종교단체 천막 아래 어르신들이 모여들고, 다른 편에선 민주노총의 집회 준비가 한창이다. 여기저기 잠에 빠져있거나 멍한 얼굴로 서성대는 노숙자들이 보이고 지하철역과 버스환승센터에서 쏟아져 내린 사람들은 열차 시간에 맞추려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이념 계층 세대를 달리하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을 한꺼번에 만나는 이곳에서 대중과 현대미술의 소통이 시도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옛 서울역사를 복원해 2011년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문화역 서울 284’에서 열리는 ‘대중의 새 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 전.

전시는 어떻게 대중과 미술이 만나고, 새로운 형식과 표현으로 소통하는지 다루고 있다. 예술 영역을 일상까지 넓힌 팝아트뿐 아니라 신진에서 중진까지 작가 25명의 회화 조각 사진 설치 퍼포먼스를 두루 짚은 전시다. 7월 14일까지. 무료. 02-3407-3500

○ 대중의 새 발견

천성길 ‘냉장고에 들어간 코끼리’. 문화역 서울 284 제공
천성길 ‘냉장고에 들어간 코끼리’. 문화역 서울 284 제공
전시는 한국화와 민화에서 얻은 모티브를 ‘동구리’라는 캐릭터로 재구성한 권기수의 풍선 숲, 하트를 담은 만국기가 찍힌 강영민의 열기구 같은 팝아트에서 시작된다. 이어 1998년 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연재한 만화가 이우일이 명화와 영화 이미지를 패러디한 일러스트레이션, 뒷골목 낙서에서 시작한 그라피티 분야 1세대 작가들의 작품, 화투와 백수생활을 소재로 한 실험 애니메이션 그룹 MOD(Move or Die)의 재기발랄한 애니메이션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가르는 시선에 딴죽을 거는 작업이다.

다방의 문화적 맥락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상의 김창겸,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사진조각으로 구축한 권오상, 1960∼80년대 LP음반 라벨을 패턴처럼 구성한 이기일의 작품에는 대중의 감성과 욕망이 스며 있다. 스파게티와 인간을 합성한 윤현선, 자신의 피를 물감으로 활용해 유명인사 초상을 그리는 김지훈은 본능과 성공을 추구하는 현대인을 꼬집는다.

코끼리가 구겨진 채 들어간 냉장고(천성길), 거울을 향해 돌진하는 검은 소(최경우)는 막무가내 대중을 은유한 작품이다. 바퀴가 달린 단순한 구조물을 이동해 공간 배치의 논리를 바꿔보고(전미래) 단추를 붙이는 노동의 대가로 10원짜리 동전을 가져갈 수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여(최현주) 부동산과 노동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대중을 인식하는 예술가의 관점은 긍정과 부정, 제각각이다. 그래서 보고 나면 답보다 많은 질문이 남는데, 그것이 전시의 매력이다.

○ 서울역의 새 발견

고도성장의 길을 뜀박질하던 시절, 전국 방방곡곡에서 성공에 대한 꿈과 욕망을 품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다시 흩어졌다. 그 희망과 좌절의 시간을 오롯이 간직한 옛 서울역사의 중앙홀 대합실과 귀빈실에 자리한 작품은 전시장 밖 상황과 맞물리며 묘한 시너지를 낸다. 온갖 선교활동과 보수-진보단체의 집회들, 이곳을 주거지로 삼은 노숙자와 잠시 있다 떠나는 여행자들…. 한국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김노암 예술감독은 “역은 대중이 탄생하는 장소이고, 서울역은 우리 대중문화의 상징적 공간”이라며 “현실과 대중의 변화를 짚는 시각 예술가들의 해석과 표현을 아우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대중을 수동적 존재로, 대중문화를 하위문화로 보지 않고 예술과 대중이 서로를 참고하고 모방하는 대등한 관계로 조명하려는 노력이 돋보인 전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권기수#문화역 서울 284#천성길#대중의 새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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