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단청 스타일의 유쾌한 패션, 한 줄기 빛이 내려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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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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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본점에 ‘라이’ 팝업매장 낸 이청청 디자이너

여성복 브랜드 ‘라이(LIE)’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팝업’ 매장을 여는 신인 디자이너 이청청 씨가 자신의 의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는 의지하고픈 가족이자 닮고 싶은 선배”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제공
여성복 브랜드 ‘라이(LIE)’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팝업’ 매장을 여는 신인 디자이너 이청청 씨가 자신의 의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는 의지하고픈 가족이자 닮고 싶은 선배”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제공
소리 없는 전쟁터, 백화점. 그중 의류 매장은 최전방 격전지라 할 만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품부터 감각적인 영캐주얼 브랜드까지 가지각색의 옷들이 손님들의 지갑을 노린다. 흥미롭게도 이 전장엔 올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특히 이제 막 브랜드를 낸 신인 디자이너에겐 더욱 그렇다.

1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여성복 브랜드 ‘라이(LIE)’로 팝업 매장(일정 기간 운영하는 형태)을 여는 신인 디자이너 이청청 씨(34)는 ‘노장’ 틈에 낀 ‘신병’과 같다. 팝업 매장은 실력 있는 디자이너 발굴을 목적으로 롯데백화점이 지난해부터 마련했다. 그렇지만 팝업 매장을 낸 신인 디자이너는 이 씨가 처음이다.
“아버지는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이상봉 빌딩’에서 그를 만났다. 사실 이 씨는 한글 서체 디자인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아들이다. ‘라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자신의 성(姓)을 ‘LEE’가 아닌 ‘LIE’로 쓰는 그의 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유명인 2세라면 부모의 후광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렇지 않은 것이 궁금했다.

“아버지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예요. 정보기술(IT)이나 한글을 패션에 접목하는 등 실험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본받고 싶었어요. 처음엔 아버지 브랜드 ‘LIE SANG BONG’의 ‘세컨드 브랜드’(오리지널 패션 브랜드의 보급판)로 방향을 잡기도 했죠.”

2년 전 위스키 브랜드 ‘시바스 리갈’ 패키지 창작 전시회에 함께 참여한 이상봉(왼쪽) 이청청 씨. 동아일보 DB
2년 전 위스키 브랜드 ‘시바스 리갈’ 패키지 창작 전시회에 함께 참여한 이상봉(왼쪽) 이청청 씨. 동아일보 DB
그는 아버지가 최근 선보인 ‘단청(丹靑)’ 스타일을 재해석해 의상을 디자인했다. 고풍스러운 아버지의 의상을 2030 여성을 겨냥해 감각적으로 바꿨다. 흰색 바탕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두거나 평범한 코트 끝을 비대칭으로 자르는 등 미니멀리즘(단순 간결함) 속에 아방가르드(전위성) 요소를 넣었다.

곧 공개할 가을겨울(FW) 의상 중에는 큰 하트 무늬에 ‘Love is Lie(사랑은 거짓말)’라는 문구를 넣은 티셔츠도 있다. “차분함 속에 반전을 두어 유쾌한 옷을 만들고자 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해외 컨템포러리(젊은 여성을 겨냥한 의류) 브랜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며 “이번 팝업 매장 운영은 국내 컨템포러리 브랜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라이’ 정식 매장 내야죠”

이 씨는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매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한 ‘영국 런던의 센트럴세인트마틴칼리지 오브 아트&디자인’으로 두 번이나 유학을 다녀왔다. 1998년에는 미디어학을 배웠지만 2006년에는 남성패션으로 전공을 바꿔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직접 옷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지난해에는 남성복으로 영국 런던 패션쇼 무대에 섰고 미국 뉴욕 패션 박람회도 참가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 패션쇼를 봤어요. 런웨이에서 박수 받는 아버지를 보고선 디자이너의 희열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친구들이 로봇을 갖고 놀 때 전 아버지 사무실에서 재단 가위나 관절 인형을 만지작거렸죠. 미술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 정도로 감각도 있었죠.”

하지만 이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패션학과가 아닌 역사교육학과에 입학 원서를 냈다. “사춘기 시절엔 매일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싫었거든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역사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다. 패션 공부를 하고 싶어 아버지를 찾아갔다. “네가 알아서 해라”는 말로 아버지는 아들을 믿어줬다. 그는 아버지를 의지하고픈 가족이자 닮고 싶은 선배 디자이너로 여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아버지는 ‘뛰어넘어야 할 존재’가 아닌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됐다. 2년 전 위스키 브랜드 ‘시바스 리갈’ 패키지 창작 전시회에 부자가 같이 참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씨의 목표는 아버지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는 것. “아직은 아버지에 비해 부족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됐을 때 다시 평가하라”며 웃었다. ‘라이’ 브랜드의 정식 매장을 여는 것이 현재 목표고 아버지의 브랜드 ‘이상봉’을 ‘구치’ 같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신병’ 이청청(李淸靑). 그의 패션 인생이 이름처럼 맑고 푸르기를.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이상봉#이청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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