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만에 무대컴백… 이젠 다 비우라는 말 가슴에 ‘팍’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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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3월의 눈’ 장오 역 변희봉

눈 내리는 오후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상징인 붉은 벽 앞에 선 배우 변희봉. 그는 “드라마 촬영은 순간에 반짝 변신해야 하고 영화는 감독 마음에 들 때까지 수십 컷을 찍는다. 연극은 무척 다른 장르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눈 내리는 오후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상징인 붉은 벽 앞에 선 배우 변희봉. 그는 “드라마 촬영은 순간에 반짝 변신해야 하고 영화는 감독 마음에 들 때까지 수십 컷을 찍는다. 연극은 무척 다른 장르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대사할 때 배우는 감정을 덜어내지만 듣는 사람은 그 감정이 느껴지게요.”, “너무 처량하게 걸어가지 말고 드라이하게 가세요. 하지만 관객은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요.”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주문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5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의 간이 무대에 선 배우 변희봉(71)은 “아니, 그래도 한 군데서는 강조를 해야…”라고 하다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변희봉이 40여 년 만에 연극무대에 돌아왔다. 그는 국립극단 레퍼토리인 ‘3월의 눈’으로 3월 1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선다. 그가 연기하는 ‘장오’ 역은 2011년 초연 때 고 장민호 선생(1924∼2012)이, 지난해엔 TV드라마 ‘추적자’의 서 회장 역으로 빛을 발한 박근형이 맡았다. 변희봉보다 두 살 많은 박근형도 스튜디오를 찾아 연습장면을 지켜봤다. 이날이 세 번째 연습인데 변희봉은 이미 대사를 다 외운 상태였다.

“연극인들이 연극판에 온 나를 보고 ‘거기(드라마·영화)서나 잘 허지, 나이 먹어서 여기까지 오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이 다 선수이기도 하고요. 또 손 감독이 어떤 불호령을 내릴지 모르고….(웃음) 마누라가 책(대본)을 같이 읽어줘서 어렵지 않게 외웠습니다. 아직 대사를 하는 것뿐이지 뭐가 잘 안 됩니다.”

청년 시절 그가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고 차범석 선생(1924∼2006) 덕분이었다. 1960년대 중반 차범석은 극단 ‘산하’에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준비하다 한 배우가 펑크를 내자 동향 후배인 변희봉을 불렀다.

“하도 술을 마셔서 삐쩍 야위었을 때인데 비서 역할을 아주 재밌게 했습니다. 이후 4∼5년간 산하에서 만드는 연극 10여 편에 연달아 출연했지요.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극을 안 하게 됐습니다. 차 선생이 ‘망할 자식들, 돈 맛 보니까 여기는 얼씬도 안 하고 그런다’고 농담하셨죠.”

오래 묵은 한옥에 사는 노부부의 하루를 그린 ‘3월의 눈’은 지난해 11월 장민호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대본을 찾았을 정도로 애착을 보인 작품이었다. 국립극단은 그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연륜 있는 배우를 찾아 나섰지만 연극 무대를 소화해 낼 인물을 쉽사리 찾지 못하다 변희봉에게 제안했다. 그동안 장오는 더블 캐스트였지만 올해는 원 캐스트다. 김미선 국립극단 PD는 “변 선생님의 체력과 열정을 믿었다”고 했다. 장민호와는 1993년 MBC베스트극장 ‘부자자효’에서 부자로 출연한 인연이 있다.

“1960년대 말 연극할 때 손 감독은 순둥이에다 말 없는 무대감독이었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손 감독이 전화를 해서 ‘연극 할 시간이 되느냐’고 묻기에 ‘연극이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나 한 번 보자, 밥 먹자’ 했더니 퀵서비스로 대본을 보내더라고요. 연극에 마음은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지요. 그래서 ‘나를 꼭 시키고 싶으면 오디션을 해서 가능성이 있는가 보라’고 했습니다.”

오디션을 통과했지만 마음이 조마조마하던 때, 손 감독이 “백성희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식사자리로 알고 나갔더니 상대역인 백 선생과 함께 포스터 촬영을 뚝딱 해버렸다고.

그는 ‘3월의 눈’에서 “이젠 다 비우고 가게”라는 대사가 마음에 꽂힌다고 했다.

“이 작품을 보면 각자 자신들의 부모가 생각날 겁니다. ‘나는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자문도 해볼 것 같고요. 장민호 선생이 이 역할을 했던 마음을 따라서, 그와 같은 마음의 표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TV나 영화에서 보는 변희봉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여러 회한을 풀어내는 변희봉을 볼 수 있는 무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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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역에 박혜진이 번갈아 출연한다. 3월 1∼23일 서울 서계동 백성희 장민호극장. 1만∼3만 원. 1688-5966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변희봉#3월의 눈#장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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