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비행기를 탔던 때가 떠오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힘차게 달리다 바퀴를 접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늘은 너무 높고 넓었다.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공간 같았다. 신성하거나 근사한 사람만이 이 공간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밖에다 발을 디딜 수 없다는 점도 무시무시했다. 붕 뜬 느낌이 어떤 건지 온몸으로 파악이 됐다. 그 옛날 사람들이 왜 하늘을 날고 싶어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만날 올려다보기만 하던 사람이 내려다보는 일을 하게 될 때의 어리둥절함이 그때 거기 있었다.
‘드래곤 플라이트’가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 나는 섣불리 발을 들이지 못했다. 나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늘은 내가 결코 제어할 수 없는 공간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게임을 하는 걸 보았다. 오른손 엄지를 여유롭게 움직이며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모습을. 그 광경을 보고 추락에 대한 공포가 상당 부분 사그라졌다. 화면이 2차원이니 3차원 공간을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느끼지 않아도 됐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곤 하지만, 나는 게 아니라 외려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아리송함이 ‘드래곤 플라이트’의 매력이었다.
첫 비행 때 나는 500m를 채 넘기지 못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탓이었다. 구석에 있다가 화면 상단에 느낌표가 뜨면 어쩔 줄 몰랐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죽 미끄러졌고 게임은 그대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무기 업그레이드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젠 거침없이 달려드는 용들을 마냥 피하기만 하지 않았다. 숨어 있던 공격성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싸움을 배운 자가 거기에 맛을 들이면 위험하다고 했던가. 나는 이제 지나치게 저돌적이어서 장시간 비행에 실패하게 됐다.
앞으로 날아가는 것은 게임이 알아서 해주므로 실상 플레이어가 해야 하는 일은 간단하다. 몬스터를 피하거나 거기에 달려들어
맞서거나. 얼핏 단순한 듯 보이지만 이 단순함에 함정이 있다. 언제나 ‘조금만 더’란 욕심이 화를 부른다. 따라서 저돌적인 사람은
참는 법을 배우고 소심한 사람은 맞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 우물만 파다가는 그 우물에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떨어지는 동전과
보석들을 아기 새처럼 넙죽 받아먹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일단은 용들을 죽이거나 피해야 한다.
모든 기록경기는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일, 극복하는 일이다. 더 멀리 뛰는 사람의 마음, 더 빨리 달리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더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오래 비행할 수 있을까. 하이퍼 플라이트로 100m를 빛의 속도로 진격할 때면
롤러코스터가 전속력으로 하강할 때가 생각난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용들이 다시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고 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게임에 깊이 빠져들면 일이 커진다. 경쟁 심리까지 불붙으면 눈알이 뒤집히는 건 한순간이다.
우리에겐 골드도 필요하고 날개도 필요하고 수정도 필요하다. 새로운 비행기가 갖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말이지 필요한 게
많다. 이 욕망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결국 돈이 필요하다. 지갑을 열어야 일이 좀 수월해지는 것은 게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료 게임이라 시작했지만 결국 현금 결제를 하고 마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좌우로 화면을 문지르면서 돈 생각을
하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야심을 품고 시작한 비행이 이번에도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확실히 비행은 피곤하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여기가 진짜 하늘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올려다볼 때만 마음 편한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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