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보단 검증된 책… 구간이 명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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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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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9개 대학 올 한 해 ‘도서 대출순위 30위’ 분석해 보니…

올 한 해 대학생들이 대학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 본 책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유럽 출신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었다. 대학생들은 외국 작가들의 로맨스 소설을 빌려 읽으며 어려운 경제 현실이나 취업 현실에서 받는 고통을 해소하고 화제가 되는 신간이나 교양서는 기다리지 않고 즉시 구입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동아일보DB
올 한 해 대학생들이 대학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 본 책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유럽 출신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었다. 대학생들은 외국 작가들의 로맨스 소설을 빌려 읽으며 어려운 경제 현실이나 취업 현실에서 받는 고통을 해소하고 화제가 되는 신간이나 교양서는 기다리지 않고 즉시 구입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동아일보DB


구관이 명관이고 ‘구간(舊刊)이 명간(名刊)’이었다.

올 한 해 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본보가 전국 9개 대학(건국대 경북대 고려대 부산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도서관의 올 한 해 도서 대출순위를 분석한 결과 대학생들은 인기 있는 외국 작가의 소설과 출간된 후 시간이 지나 검증된 도서를 많이 빌려 본 것으로 나타났다. 올 한 해 서점가에 열풍을 몰고 왔던 힐링 에세이들을 대출 순위 30위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9개 대학별 대출순위 30위 목록을 보면 유럽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인다. 가장 많이 보이는 이름이 베르나르 베르베르(15회), 알랭 드 보통(13회), 기욤 뮈소(8회) 순이었다. 유럽 출신의 이 세 작가는 최근작뿐만 아니라 출간된 지 여러 해가 지난 작품들도 고루 대출순위 상위에 올려놓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은 고려대와 성균관대에서는 1위, 연세대와 서강대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알랭 드 보통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건국대와 부산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의 대출순위 30위 안에 포함됐고, ‘우리는 사랑일까’와 ‘불안’도 순위에 올랐다. 기욤 뮈소의 ‘사랑하기 때문에’ ‘구해줘’ ‘종이 여자’도 대학별로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세 작가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시장성이 있는 저자들”이라며 “5∼10년 전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일본 작가들의 서정적인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지금은 감각적인 로맨스 소설에 학생들이 몰입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3포 세대’나 ‘6무 세대’로 거론되는 대학생들이 이들의 연애 소설을 읽으며 어렵고 불안한 현실의 고통을 덜어보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3포 세대’란 연애, 취업, 결혼을 포기한 세대, ‘6무 세대’는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희망이 없는 세대를 말한다.

이에 비해 한국 소설은 학교별 순위에 한두 권 포함되는 데 그쳤다. 김진명의 ‘고구려’만이 경북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4개 대학에서 10위권 안에 들었다. 그동안 꾸준히 대출순위 목록에 올랐던 ‘태백산맥’ ‘토지’ 등 대하소설도 학교별로 두 권 정도가 20위 이하의 하위권에 들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들이 베스트셀러로 꼽은 책들이 대학의 대출순위 상위권에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같은 이른바 ‘힐링 에세이’ 열풍이 불었던 올 한 해 출판계 흐름과는 다른 양상이다. 올해 150만 부가 팔린 ‘멈추면…’은 성균관대(13위)와 부산대(18위) 등 두 곳의 대출순위 30위 목록에 들었을 뿐이다.

2012년에 나온 신간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특징이다. 연세대 국문학과 3학년 송슬기 씨(22)는 “신간을 제때 빌려보기는 쉽지 않다”며 “돈을 주고 사 보기에 부담스러운 책들은 기다려서라도 빌려 보지만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문교양서들은 바로 사 본다”고 전했다.

한 대학 도서관 관계자는 “화제의 중심에 있던 검증된 교양서는 2, 3년이 지나도 오랫동안 인기 대출순위 목록에 머물러 있는 편”이라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스크린셀러’, 즉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 됐던 소설들의 인기도 뜨거운 편이었다.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과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꾸준히 빌려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비롯한 영화 ‘밀레니엄’의 3부작 시리즈와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도 목록에 올랐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서관#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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