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2012, 난 몇점짜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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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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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3명 ‘올 한해 제대로 살았나’ 6가지 분야 평가해 본 결과는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네 사람(왼쪽부터 이내화 소장, 정지영, 박세운, 이남길 씨)이 손전등을 이용해 ‘2012’숫자를 그려봤다. 2012년, 당신은 어떻게 살았는가.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네 사람(왼쪽부터 이내화 소장, 정지영, 박세운, 이남길 씨)이 손전등을 이용해 ‘2012’숫자를 그려봤다. 2012년, 당신은 어떻게 살았는가.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호모 리플렉텐스(Homo Reflectens).

인간은 반성하는 존재다. 거의 습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본다. 그렇지만 ‘반성의 인간’을 뜻하는 인류학 용어는 아직 없다. 왜 여태 그런 단어가 생기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래서 ‘O₂’ 취재팀이 만들어본 단어가 ‘호모 리플렉텐스’다. 서양고전 전문가인 김헌 박사(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의 도움을 받았다. ‘리플렉텐스’는 반성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동사 ‘리플렉토(Reflecto)’의 분사형(分詞·형용사의 기능을 가지는 동사의 변화형)이다. 그런 식으로 ‘호모 사피엔스’(Sapio→Sapiens·슬기의 인간)나 ‘호모 루덴스’(Rudo→Rudens·유희의 인간)란 말이 생겼다.

“작년 한 해 물가, 일자리 문제로 참으로 국민 여러분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 함께 힘을 모아….”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무척 고달팠습니다. … 2012년 우리는….”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2012년 신년사다. 늘 그래왔듯 반성부터 시작한다. 아마 요즈음 쏟아지는 각종 송년사의 99.9%도 비슷한 패턴일 것이다. 2013년 신년사도 뻔하다. 지난해(2012년)를 다시 짚어보고, 올해(2013년)엔 더욱 분발하자는 얘기일 것이다.

심지어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매체들의 2012년 신년 공동사설도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은 피눈물 속에 2011년을 보내고…”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강영계 건국대 명예교수(철학)는 “자기반성은 철학의 시작”이라고 했다. 인간 사고의 발전은 결국 반성을 통해 이뤄졌다는 뜻이다. 이른바 ‘반성의 시즌’이라는 세밑이다. 번드르르한 말만 할 게 아니라 한 해를 꼼꼼히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반성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작심삼일’이란 난적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여기 지난 1년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지’(QR코드 참조)가 하나 있다. 미국의 성공학자 대런 하디가 쓴 ‘복리효과(The compound effect)’란 책에 실린 것을 번역해 놓았다. 6개 분야(대인관계와 가족, 라이프스타일, 신체건강, 정신건강, 일, 재정)에 걸쳐 질문이 10개씩 주어진다. 평가지를 완성한 뒤 각 분야 총점을 구하면 된다.

12일 저녁, 독자를 대표해 3명의 남녀가 먼저 ‘2012년 인생평가’에 나섰다. 각각 창업, 결혼, 취업으로 2012년을 멋지게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려낸 ‘내 인생의 바퀴’는 둥글둥글 균형이 잡혔을까, 아니면 삐죽삐죽한 모양으로 덜컹거렸을까.

○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바쁠 때

“아내와 네 살 난 딸에게 미안하죠.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했거든요. 저보다 더 잘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훌륭한 아내가 괜히 저를 만나서 이런 상황에 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족과 행복하게 살려면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사업을 시작한 뒤로 힘들기도 하고요.”

2012년은 ‘내 사업’을 시작하겠다던 이남길 씨(42)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된 해다. 그는 9월 서울 종로구 화동에 테이크아웃 음료 전문점을 열었다. 가족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 올해를 넘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3월 소상공인진흥원 서울서부센터에서 창업 상담을 받는 등 개점을 서둘렀다. 가게 이름은 ‘에이미스 키친 랩(Amy’s Kitchen Lab)’. 아내의 영어 이름인 ‘에이미’와 항상 메뉴를 연구하는 곳이란 의미를 담아 직접 지었다. 인테리어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매장도 직접 꾸몄다.

“인생은 ‘들이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무리를 하기는 했지만, 올해 못했다면 내년에 하기는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저질렀다는 게 만족스럽습니다. 제 나이도 마흔을 넘어 이제 인생의 전환점에 섰잖아요.”

하지만 큰일을 벌이면서 삶에 여유가 없어졌다. 평가 결과 이 씨는 일 항목(36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반면 정신건강(19점)과 라이프스타일(16점) 항목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을 우선 소화하는 데 정신을 쏟았기 때문에 다른 곳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연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줄었다. 매장 운영을 위해 그의 아내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했다. 경기 부천시의 한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그의 아내는 오전 연습이 끝나면 서울로 돌아와 가게를 지킨다. 서로 얼굴을 보는 시간은 늘었지만, 함께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재정 상황도 걱정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평가에서 ‘매달 수입의 10% 이상을 저축했다’ ‘6개월을 버틸 수 있는 여벌의 자금력이 있다’ 등의 항목에 최하점(1점)을 줬다. 재정 분야의 총점은 6개 항목 중 세 번째로 낮았다(20점). 이 씨는 “젊었을 때부터 신용관리를 꾸준히 하지 못한 게 아쉽다”며 “굵직한 것만 생각하고 작은 것을 놓치다 보니 신용등급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말했다.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의 등을 계속 떠밀고 있다. 결국 돈 문제는 올해 가장 큰 고민으로 남았다.

:: 이내화 이내화성공전략연구소장 ::


급하게 달리면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인생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계단 인생, 에스컬레이터 인생, 엘리베이터 인생. 이제부터는 계단을 밟아 나가면서 조금씩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세요.

○ 매너리즘에 빠질 때

“올해 직장생활에 점수를 주자면 100점 만점에 65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노력을 안 했다는 점이 좀 찔려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학생들을 대할 때도 보이는 데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까지 신경 쓰지는 못했거든요. ‘내가 현실에 안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9년 차 교사인 정지영 씨(32·여)는 훌륭한 선생님을 꿈꿨다. 책이나 TV에서 본 것처럼 교사인 자신이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열정적으로 나서고, 그 학생이 나중에 성공해서 선생님을 찾아오는 미담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학교생활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정 씨의인생평가 중 일(직업) 항목의 총점은 24점이다. 6개 항목 중 5번째다. 자신에게 보통(3점) 이상의 점수를 준 항목은 하나뿐이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출근을 위해 일어나는 게 즐겁다’ ‘일을 할 때 항상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등의 항목은 모두 3점이었다. ‘상황이 가능하다면 보수가 없더라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항목에 대한 평가는 최하점(1점)이었다.

멘토로 나선 이내화 소장(왼쪽)이 세 명(왼쪽 두번째부터 정지영 박세운 이남길 씨)의 참가자와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멘토로 나선 이내화 소장(왼쪽)이 세 명(왼쪽 두번째부터 정지영 박세운 이남길 씨)의 참가자와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올해 성장한 느낌들면 성공… 반성하되 상처내진 말자 ▼

2012년은 정 씨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 그는 “2월에 결혼을 한 뒤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활도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올해 안으로 아이를 갖기로 했던 계획도 성공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댁이나 친정과 큰 갈등도 없었다. 정 씨의 대인관계와 가족 분야 점수는 33점으로 6개 분야 중 라이프스타일 항목과 공동 1위였다.

하지만 재정 분야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삐걱댄 것은 아쉽다. 그의 인생평가에서 재정 분야 점수는 16점으로 6개 항목 중 최하위다. 그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내가 계획적으로 돈을 모으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되니 후회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 뒤에는 다시 습관대로 돈을 썼다. 그나마 남편과 상의한 끝에 결혼 첫해에 한해서 서로 월급을 따로 관리하기로 해 아직 큰 문제는 없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임신 뒤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도 못했다. 정 씨는 원래 여름에는 수영을, 겨울에는 스키 같은 겨울스포츠를 즐겼지만 임신한 뒤로는 운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의사는 하루 30분씩 산책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지루한 산책에는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요가를 배우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 사이 임신 7개월 차가 됐다. 이도 저도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 전재영 LG전자 상담실장::

지영 씨는 직장생활이나 재정적인 측면에서 성취 욕구가 많은 데 반해 스스로를 저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할 수는 없죠. 1년을 돌아보는 이때를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 곳곳에 암초가 등장할 때


“저는 대학생 때부터 마케팅에 관심이 있었고, 지난해 입사지원서도 제가 가고 싶은 곳 6, 7곳에만 냈었어요. 그렇게 취업에 성공하고 입사교육 때 조별평가에서 1등도 하니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죠.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1년이 지난 뒤 되돌아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네요.”

사실 박세운 씨(27·코오롱 인더스트리)의 비전은 연초부터 흔들렸다. 그는 ‘패션업계에서 마케팅 경력을 시작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입사 뒤 주어진 일은 스포츠브랜드 마케팅이었다. 비슷한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많은 부분이 달랐다. ‘이걸 하려고 회사에 들어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치 후 첫 두 달은 퇴사까지 고민할 정도로 흔들렸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해 마음을 다잡았지만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기대와는 다른 회사 분위기도 발목을 잡았다. “첫 회의 때였어요. 제가 생각했던 마케팅팀의 회의는, 마치 미드(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흰색 칠판에 자유롭게 필기를 하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이었거든요. 마케팅팀은 기발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회의에 들어가니 현실은 좀 많이 다르더군요.”

무 엇보다 그를 괴롭혔던 것은 신입사원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걱정이었다. 누구보다 창의적인 의견을 내놓겠다고 다짐했지만 오히려 윗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대부분 매장관리직을 맡았는데, 저만 마케팅 부서에 왔거든요. 그래서 ‘박세운 씨는 그 부서에 갈 만해’라는 말을 듣고 싶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른 동기들보다 편하게 1년을 보낸 것 같아 부끄러울 뿐이란다.

::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 ::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하면서 살 수는 없죠.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오류를 겪게 됩니다. 세운 씨가 지난 1년을 헛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발전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1년을 돌아볼 수 있는 겁니다.

○ 반성에도 퀄리티가 있다

누구보다 멋진 시작을 했던 세 사람도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많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물론 기뻤던 일, 행복했던 일도 많았지만 ‘왜 진작 그걸 몰랐을까’, ‘그때 그러지만 않았더라면’이란 후회는 행복했던 기억보다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전재영 실장은 “반성을 할 때 자기에 매몰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중된다”고 했다. 실제로는 돌이킬 수 없는데 마치 그것을 지금 바로잡을 수 있는 것처럼 몰두할 경우 결국엔 공허함과 죄책감 때문에 우울해질 뿐이다. 전우영 교수도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절대 자신에게 상처를 내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2012년 삶을 평가해 보세요. 평가항목은 ‘O2’ 블로그(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blog.donga.com/02)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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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굳이 반성을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반성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지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강영계 교수는 “권력, 돈, 지위에 관계된 일에 대한 반성만 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며 “반성의 가장 큰 요체는 인격적 성공”이라고 말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반성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잘못된 습관이나 버릇도 타인의 눈에는 쉽게 포착된다. 상대방의 삶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 늘어날 것이다.

반성은 투표와 비슷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잘잘못을 꼼꼼하게 따져야 하기에 말이다. “우리 인생도 마지막 순간까지 돌다리를 두드리듯 건너야 한다”는 강 교수의 조언을 새겨보자.

이제 보름여가 남은 2012년, 지금이 바로 건강하고 기분 좋은 반성을 시작할 때다.

권기범·김창덕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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