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그는 ‘구원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개막 공연인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서 나치 문신으로 인해 하차한 러시아 성악가 대신 타이틀 롤을 맡아 큰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페스티벌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부부는 “독일어 발음이 좋아 이해가 잘 됐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는데도 성공을 이뤄낸 것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이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씨(41·사진)를 3일 만났다.
‘방랑하는…’은 올해 일찌감치 그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작품이었다. 5월 윤 씨는 그가 전속가수로 일해 온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생애 처음으로 이 작품의 주역을 맡았다. 쾰른 오페라극장 전속가수로 일한 지 올해로 13년째. 다섯 명의 극장장을 거쳤다. 독일 친구들이 “아직도 쾰른극장에 있어?” “살아남는 비법이 뭐야”라고 물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다. 쾰른에서의 호연이 입소문을 타고 바이로이트에 전해지면서 처음 제안받았던 것은 주역의 ‘커버’(출연 예정자가 못 나올 경우 대신 출연하는 사람)였다. 올해의 호연으로 내년에도 바이로이트에서 네덜란드인을 맡기로 했다. 공연은 유럽 전역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그는 “개런티가 50% 올랐고 2016년까지 스케줄이 꽉 찼다”고 말했다.
“내 노래를 듣고, 내 오페라를 보고 다른 누군가가 생각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방이 아니라 사무엘 윤만의 특색, 나만의 카리스마를 가져야 하죠. 성악가로서 입지가 생기니 수염이나 꽁지머리를 무대에서도 그대로 살릴 수 있어 좋습니다. 수염이 캐릭터를 더 강하게 보이게 해주거든요.(웃음)”
그의 목소리는 6,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정명훈)과 모차르트의 유작 ‘레퀴엠’을 함께 한다. 소프라노 임선혜,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강요셉과 더불어 독창자로 선다.
“오페라처럼 무대를 돌아다니면서 노래하지 않는 콘서트 형식이 가수에게 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더 절제되고, 하모니를 중시하게 되니 (연주의) 완성도가 높죠. 신앙인으로 종교음악인 레퀴엠에 임하는 자세도 각별할 수밖에 없어요.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얼마나 보석 같은지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나 곧바로 관객 앞에서 노래하라고 해도 할 수 있다’는 그이지만 나라마다 기후와 습도가 달라 알레르기 증상을 달고 산다. 그는 “연주자들이 악기를 소중히 다루는 것처럼 성악가의 몸 관리는 관객에 대한 예의”라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홍삼을 잘 챙겨 먹는다”고 했다.
레퀴엠을 마친 뒤 그는 13, 15일 오만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시몬 보카네그라’의 주역을 맡고 로마로 건너가 20∼22일 로린 마젤이 이끄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노래한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28일 서울시향의 ‘합창’ 무대에 선다. 그는 “해마다 12월이면 세계 어디서든 꼭 베토벤의 ‘합창’에 참여한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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