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가꾸는 희망 나눔 현장]<4>캐논코리아 ‘다문화가정 아동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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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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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앵글로 늘씬하게, 하이앵글로 예쁘게 꿈을 찰칵

뭔 말이 필요할까. 직접 찍어보면 되지.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앞자리에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하이앵글로 직접 찍어본다.
뭔 말이 필요할까. 직접 찍어보면 되지.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앞자리에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하이앵글로 직접 찍어본다.
《다문화가정의 메카로 등록 회원만 800명이 넘는 서울 북가좌동 서대문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겨울 찬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3층 강의실에는 학교를 마친 다문화가정 초등생 어린이들이 모여들었다. 15명의 어린이가 재잘거리며 기다리는 강의는 바로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사장 강동환)이 주관하는 사진재능 나눔 교육. 캐논이 네 번째 사진교육 대상으로 이들을 찾아간 까닭은 단 하나. 다문화가정에서 자칫 깨지기 쉬운 가족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생활의 여유를 갖게 하는 데는 사진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수업 전 강사 임슬기 씨가 올해 마지막 나눔 교육을 앞두고 각오의 말을 한다.

“서로 다른 모습과 문화를 가진 부모의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욱 화목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교육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일반적인 카메라 다루기나 특수기능을 이용한 사진 찍기 교육 외에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우리 가족사진 찍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수업이 진행되자 저학년이 대부분인 어린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모두 강사의 얼굴을 주목한다. 몇몇 엄마들도 함께 강의를 들었다. 강사가 카메라의 특수기능 중 어안렌즈 기능을 가르치는 부분에선 자신이 찍어준 친구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나오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수업 분위기는 자유스러움 그 자체였다. ‘하이 앵글로 사람들 사진을 찍으면 사람의 모습이 귀엽게 나와요’라고 강사가 말하면 많은 아이들이 정말 그렇게 나오는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 사진을 찍었다. 또 ‘로 앵글로 찍으면 사람이 늘씬하게 나와요’라고 하자 이번엔 친구들을 책상 위에 세우고 밑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정말 그런지 확인했다. 일견 어수선해 보이는 강의였지만 학습과 실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효과적인 교육이기도 했다. 어린이들의 사진 습득능력은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았다.

이날의 주제인 ‘가족사진 찍기’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강사는 사진집 ‘윤미네 집’에서 발췌한 사진들을 아이들에게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윤미네 집’은 큰딸 윤미가 태어나 시집가는 날까지 아버지 고 전몽각 씨가 26년간 찍은 사진을 모은 책이다. 가족의 갖가지 표정이 담겨 있어 가족사진으로는 최고의 사진들이다.

“먼저 가족의 기쁘거나 슬픈 표정을 잡으려면 망원렌즈로 당겨서 얼굴이 잘 보이게 찍어야 합니다. 반면에 놀이하는 동생의 모습을 찍으려면 전신이 다 나와야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요. 미리 배운 대로 사람의 모습을 예쁘게 찍고 싶다면 하이 앵글로, 늘씬하게 보이고 싶다면 ‘로 앵글’로 찍으세요. 오래된 가족사진처럼 보이게 하려면 흑백으로 색깔을 바꿔 보세요. 가족들이 웃거나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 그 순간을 찍을수록 더 좋은 사진이 됩니다.”

강의가 끝난 후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박수미 사회복지사는 ‘사진기를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점이나 자신의 마음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라며 사진을 통한 가족 간의 의사소통 확장과 건강한 가족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캐논이 기증한 콤팩트카메라 10대는 카메라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육용으로 사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다문화센터에서 다문화가족지원사업을 총괄하는 이신옥 팀장에게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의 이런저런 상황에 대해 들었다. 의외로 아이들보다 부모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도 반가운 일이지만 초기 적응 단계를 지난 그 부모의 취업지원 등 부모에 대한 지원책도 나왔으면 합니다. 다문화가족은 이민자로서의 약점이 있지만 유능한 인재가 많습니다. 자녀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는 10∼20년이 걸리지만 부모는 대학 진학, 직업교육 등 취업 관련 교육에 5년 정도만 투자해도 우리 사회에 기여할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직장을 갖고 생활이 안정되어야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 사회 통합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 문제는 부모 문제를 풀어야 해결된다고 봅니다.”

동남아 등 주로 더운 지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에게 우리나라의 겨울은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게다가 경기마저 안 좋다보니 다문화가정에 관해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 많이 들린다,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결혼이 줄고 이혼은 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얼마 전에는 시댁과의 불화로 한 베트남 출신 며느리가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마다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20만 명이 훨씬 넘는 다문화가족들도 이 땅에서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정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카메라 받고 이틀만에 ‘셀프타이머’로 훌륭한 가족사진 완성▼

동생 하나의 모습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태정이.
동생 하나의 모습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태정이.
●태정이의 사진 프로젝트

캐논은 사진 재능 나눔교육의 일과성을 극복하고 미래에도 사진과 좀 더 밀접한 관계가 되도록 사진교육 외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사진교육에 흥미를 보인 학생 가운데 골라 일주일 정도 지속적인 사진 지도를 하는 일이다.

다문화센터 관계자는 김태정 군(11)을 추천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 어머니 조나 씨 사이에서 태어난, 피부는 살짝 거뭇하고 큰 눈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쾌활하고 귀여운 소년이다. 미래의 꿈은 축구선수. 이유는 축구가 그냥 재미있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은 중상 이상이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 북가좌동에 온 지가 1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태정이가 전학 간 줄 모르고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느냐며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가 있을 정도다. 의외로 태정이는 필리핀 말은 물론이고 영어도 잘하지 못했다. 영어가 유창한 조나 씨에게 왜 자녀들에게 필리핀어나 영어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배우기 싫어해서”라며 말을 흐린다. 아무튼 태정이는 한국말이 좋고 국어가 좋단다. 당연히 우리말은 유창했다.

●사진기 몇 번 만져보고 기능 마스터

태정이가 캐논코리아로부터 카메라를 받은 지 사흘째 되던 날인 11월 23일. 서대문다문화지원센터에 바이올린 교육을 받으러 온 태정이와 동생 김하나 양(9). 그리고 어머니 조나 씨까지 세 식구를 한꺼번에 만났다. 먼저 태정이와 사진에 관한 얘기부터 나누었다. 태정이는 집에 있는 카메라로 몇 차례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이 있었다. 가족들 사진을 파일로 저장할 줄도 알았다. 사진을 많이 찍어봤느냐고 묻자 대답에 앞서 카메라부터 쑥 내민다. 그 카메라에는 과제로 내준 ’우리 가족사진 찍기‘에 걸맞게 자신이 찍은 여러 장의 가족사진이 들어있었다. 그중에는 태정이를 포함한 네 식구 모두가 찍힌 사진이 있었다. 누가 찍었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셀프타이머 기능으로 찍었단다. 카메라를 받은 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벌써 태정이는 카메라의 웬만한 기능은 다 다룰 줄 알았다. 이전에 사진을 찍어 본 경험과 기계에 대한 저항감이 없어서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다 저절로 기능을 다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 얼굴을 하이 앵글로 찍었더니 실제보다 예쁘게 나왔다며 엄마가 나온 영상을 보여준다. 동생과 어머니를 대상으로 하이 앵글로 찍는 방법을 그 자리에서 실연해 보였다.

태정이에게 사진을 찍어 본 소감을 물었다. ‘가족의 모습을 찍어서 금방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카메라에 가족사진을 저장해 둘 수 있어 좋다’는 대답이다. 아이다운 평범한 말이지만 디지털 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말이었다. 초등학생이 이 정도면 더이상의 사진찍기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했다. 커서도 계속 사진과의 인연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 때문일 것이다.

조나 씨에게 다문화가족으로 사는 얘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짧은 한국어 탓에 수시로 대화가 끊기자 동석한 박수미 사회복지사가 옆에서 우리말을 통역 아닌 통역을 했다. 태정이 어머니의 몇 마디 말 속에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의 현실이 녹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한없이 밝기만 한 아이들의 모습과는 달리 요즘 태정이네 삶은 사실 녹록치 않았다. 태정이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 일을 그만두고 최근에는 오토바이 퀵서비스 일을 한다. 일이 많아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다. 조나 씨는 필리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하고 교사 생활을 한 지식인이다. 2000년 홍콩에서 종교관계 일을 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한 다음 2001년 국내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영어강사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보탤 수 있었다. 십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때만 못하다. 최근 2주째 파트타임 일조차 구하지 못했다.

●나눔예술 교실서 바이올린도 배워

그래서 일요일이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열리는 필리핀 장터에 나간다. 거기서 음식 파는 일을 도와 생활비를 번다. 그런 날은 남편이 아이를 돌본다. 하지만 아이들은 불만이 많다. 피곤에 지친 아빠가 쉬는 날이면 밀린 잠을 자느라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과 둘이서 월 200만 원 정도만 벌어도 네 식구가 무난히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것도 힘들어 걱정이 점점 쌓여만 간다.

어려운 가운데 그나마 다행인 일도 있다. 첫째는 작년에 살던 곳이 집값이 너무 비싸 고민했는데 북가좌동으로 오면서 SH공사가 제공하는 공공주택에 입주할 수 있게 된 일이다. 다세대주택 반 지하 방 두 개짜리 집값으로 월 4만7000원만 내면 된다. 그림 같은 집은 아니지만 싼 집값 덕에 네 식구 생계에 숨통이 트였다.

또 다행인 점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다문화지원센터와 더욱 가까워진 점이다. 조나 씨는 아이들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다문화센터가로 바로 달려 간다. 그곳에선 문화도 접할 수 있다. 두 아이가 금호석유화학이 후원하고 동아일보가 주관하는 나눔예술 교실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올해 말에는 다문화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예정이다.

어렵지만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태정이네 가족. 얼마 전에는 온 식구가 한 사회단체의 도움으로 독도를 다녀왔다. 앞으로는 제주도를 가보고 싶단다. 얼른 형편이 좋아져 제주도에서 온 가족이 사진도 찍으며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사진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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