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불황 출판사 먹여 살리는 엉뚱한 장르의 ‘효자 책’들

  • 동아일보

인문교양서 전문이 육아 서적으로… 사회과학 책 펴내는 곳이 영어학습서 덕에…

딸려 나오는 된장찌개가 맛있어 매일 장사진을 이루는 유명 고깃집, 색다른 디저트로 손님을 끄는 파스타 전문점. 맛집의 인기비결이 주메뉴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출판사도 그렇다. 인문교양이나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가 전혀 엉뚱한 장르의 책을 팔아 먹고살기도 한다. 출판계가 만년 불황과 침체기를 겪는다 해도 출판사에는 식구들을 지탱해주는 알토란 같은 효자상품이 하나씩은 있다.

인문교양서를 출간하는 그린비의 효자상품은 ‘삐뽀삐뽀 119’ 시리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의 필독서다. 1996년 초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매년 10만 부 정도가 꾸준히 나간다. 유재건 대표는 “이 시리즈 덕분에 15년간 걱정 없이 인문서를 펴내고 있다”며 “철학책을 내서 철학책을 또 만들어낼 수 있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철학서는 100부를 팔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사회평론에는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가 효자다. 1999년 출간 이후 2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지금도 매년 1만∼2만 부가 팔린다. 윤철호 대표는 “‘영어공부…’ 덕분에 직원 월급도 제때 못 주는 악덕 업주라는 오명을 벗었다”며 “이 책을 출간한 다음 해 14억 원이라는 빚을 갚고도 수익이 남아 사회과학 책을 여러 권 냈다”고 전했다. 사회평론은 이를 계기로 새로운 브랜드 브릭스에듀케이션을 만들어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에도 영어 교재 판권을 수출하고 있다.

‘소비본능’ ‘위험한 정치경제학’ 등 경제 경영서를 전문으로 내는 더난비즈도 이종(異種) 도서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지난해 2월 자체 브랜드 북로드가 출간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5권짜리 시리즈가 약 50만 부 팔렸으며 월 2만 부씩 나간다. 경제 경영 전문 출판사인 한즈미디어도 월 1500부가 꾸준히 나가는 ‘쉽게 배우는 만화 캐릭터 데생’의 덕을 보고 있다.

문학과 인문서를 함께 내는 은행나무는 3부작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가 효자상품이다. 출판사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교보문고가 선정한 스테디셀러 목록에 5년간 이름을 올려 출판사 입지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출판계에 따르면 분야별 손익분기점은 인문교양서가 1000∼1500부, 에세이나 실용서는 2000∼3000부 정도다. 의외의 책들이 선전하자 출판사는 출판 장르 다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기옥 한즈미디어 대표는 “경제 경영서 시장이 많이 축소돼 장르 다변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나 ‘대바늘 손뜨개의 기초’처럼 대상 독자와 수요가 분명한 책들이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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