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용천수 뿜는 쇠소깍-제주의 허파 곶자왈, 생명수를 빚어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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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물을 찾아서

서귀포의 칠십리 바다와 백록담 아래서 흘러내리는 효돈천, 그리고 이 물 바닥에서 솟구치는 지하용출수가 한데 어우러진 쇠소깍의 협곡. 여행객들이 투명카약을 타고 구멍이 뻥뻥 뚫린 현무암 바위절벽의 협곡을 지나고 있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서귀포의 칠십리 바다와 백록담 아래서 흘러내리는 효돈천, 그리고 이 물 바닥에서 솟구치는 지하용출수가 한데 어우러진 쇠소깍의 협곡. 여행객들이 투명카약을 타고 구멍이 뻥뻥 뚫린 현무암 바위절벽의 협곡을 지나고 있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화산섬엔 특별한 게 있다. 풍부한 지하수다. 하와이 제도(미국)와 프렌치폴리네시아(타히티를 포함한 남태평양 114개 섬의 집합), 제주도가 모두 같다. 그 물엔 공통점이 있다. 깨끗함과 좋은 미네랄 성분, 깔끔한 맛이다. 화산지층에 스며들어 지속적으로 여과되고 화산쇄설물에 함유된 미네랄이 녹아들며 지하의 대수층에 장기간 저장된 덕분이다. 게다가 주변 대양엔 오염원도 없다. 하와이의 ‘하와이안 스프링스’(생수 브랜드), 제주도의 ‘삼다수’는 바로 그 물이다. 타히티 맥주 ‘히나노’의 상큼함도 그 물에서 온다. 지하수뿐일까. 곳곳에 발달한 폭포와 허다한 용천수(지표면에 대량으로 샘솟는 지하수)도 자랑거리다. 화산섬 제주도를 여행하는 또 한 가지 방법. 이렇듯 훌륭한 제주의 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신비로운 물빛 쇠소깍에서 즐기는 투명카약 투어


오후 3시 쇠소깍(서귀포시 하효동). 낭패한 여행자들이 하염없이 물만 쳐다보고 있다. 멀리서 찾아왔건만 투명카약은 예약이 끝나 이 기막힌 협곡과 수중을 투명카약에 앉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서다. 성수기면 늘 이렇다. 체험객이 넘쳐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쇠소깍에서 10대뿐인 투명카약을 타려면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쇠소깍은 제주 섬에서 만나는 아주 특별한 물이다. 그 물은 길이 400m, 폭 20∼30m의 협곡을 가득 채운다. 수심은 들쭉날쭉. 깊은 곳은 11m나 되고 얕은 곳은 60cm에 불과하다. 그래도 협곡은 늘 물로 가득 찬다. 한끝이 바다와 통해서다. 그 반대편 끝은 기이한 모양의 잿빛 조면암질 현무암의 벽. 평소엔 말라 바위만 드러내는 효돈천 바닥이다. 협곡 양옆도 바위인데 거기엔 ‘타포니’라는 커다란 구멍이 숭숭 났다. 그 바위절벽 위로는 수풀이 우거졌다. 그래서 카약을 타고 협곡 한중간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혹성에 온 듯 착각할 정도로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그 쇠소깍 물을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 여러 가지지만 그 첫 번째는 빛깔이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협곡의 물빛. 아침 점심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날씨에 따라 제각각이다. 어떤 때는 초록빛이고 어떤 때는 코발트빛이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투명도다. 어찌나 맑은지 물고기가 유영하는 모습까지 훤히 보인다. 취재 당시엔 바닥에 몸을 반쯤 숨긴 장어도 보였다. 뒤에서 패들을 젓다 그걸 본 고종림 씨(40·쇠소깍레저 대표)의 말이다. “옛날엔 이 장어 보려고 찾아오는 여자 분이 많았어요. 이걸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인데요. 어떠세요, 좀 그런 분위기 못 느끼세요. 신비롭다거나 하는…. 실제로 여기 주민은 쇠소깍을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왔습니다. 무당도 여기서 내림굿을 했고요.”

고 씨는 쇠소깍이 있는 하효동 토박이다. 하지만 서핑대회에 나갈 만큼 서핑 마니아인 그에겐 쇠소깍이 달리 보였다. 외지 여행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제주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이 신비로운 물빛과 투명한 수중, 멋진 협곡을 보여줄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그러다 인터넷 서핑 중에 외국에서 막 상품화된 투명카약을 발견했다. 방탄유리 재질인데 쇠소깍에 안성맞춤이었다. 투명카약 투어는 3년 전 그렇게 시작됐다.

그가 카약을 협곡 막장 부근에 대고는 물속을 가리켰다. 바닥에서 용솟음치는 지하수를 보라는 것이었다. 그건 확연히 보였다. 그 양은 엄청났다. 협곡 물의 20%를 차지할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쇠소깍의 투명한 수중, 신비로운 물빛 모두 이 용천수 덕분이 아닐까 싶다.

쇠소깍은 마을의 옛 이름 ‘쇠돈’과 연못이란 ‘소(沼)’에 제주 사투리로 ‘끝’을 뜻하는 ‘깍’에서 왔다. 쇠소에 굳이 ‘깍’을 붙인 이유. 한라산 정상부로부터 한결같이 이어져 예서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수계의 종점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 물은 총연장 13km의 효돈천. 백록담 아래서 흘러내려 서귀포 바다로 흘러드는 산남(한라산 남쪽) 제1의 하천이다. 원앙폭포와 야영장이 있는 돈내코(해발 700m)와 백록계곡은 이 효돈천의 중류. 동네 이름도 게서 왔는데 돈내코가 있는 위쪽이 상효동, 쇠소깍의 아래쪽이 하효동이다. 쇠소깍이 효돈천 하구가 되는 것은 빗물이 내를 형성해 흐를 때뿐이다.

제주 지하수의 일등 공신 곶자왈을 찾아서

거문오름에 발달한 곶자왈 수풀. 나무가 자라는 지표면은 흙바닥이 아니라 크고 작은 암괴가 허투루 쌓여 이룬 요철지형의 바위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거문오름에 발달한 곶자왈 수풀. 나무가 자라는 지표면은 흙바닥이 아니라 크고 작은 암괴가 허투루 쌓여 이룬 요철지형의 바위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제주 섬엔 ‘물허벅’이란 게 있었다. 물을 담는 20L들이 항아리다. 물허벅은 물구덕(물지게)에 담아 물배(끈)로 등에 진다. 그때 물허벅은 물빵(높이 1m가량의 돌 선반)에 올려두고 선 채로 진다. 내릴 때도 같다. 물허벅을 지는 건 여자들 몫으로 바닷가의 용천수 물통에서 받아 온다. 멀게는 1∼2km나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고된 노동이 사라지게 됐다. 어승생(한라산 중턱)에 한밝저수지가 완공(1971년 12월 16일)되면서 수돗물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이후 지속된 섬의 지하수 보전 관리는 선진적이었다. 지하수를 공공자원으로 선언한 것도, 이용을 허가제로 제한한 것도 국내선 제주도가 처음이다. 이 지하수 관리 모델은 훗날 외국도 배워 갔다.

제주도의 용출수는 중단이 없다. 매일 110만 t이 솟구친다. 섬 지하의 대수층에 고인 지하수 양(이하 연간)은 강수량(34.3억 t)의 46.1%(15.8억 t)나 차지한다. 국내 어디도 강수의 지하함량에서 이걸 능가하지 못한다. 물이 쉽게 스며드는 화산지형 덕분인데 그중에서도 수훈갑은 ‘곶자왈’이다. 곶자왈은 제주도에서만 발달한 특별한 화산지형으로 섬 안에 크게 네 곳이 있다.

곶자왈을 제주말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나무와 넝쿨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이다. 그 곶자왈을 찾아 거문오름(유네스코 자연유산)에 갔다. 설명 그대로 수풀이 우거진 숲인데 그 바닥이 특이했다. 흙 대신 크고 작은 화산석 암괴로만 이뤄진 울퉁불퉁한 요철(凹凸)지형의 돌바닥이다. 그렇지. 이런 데 물이 고일 리 없다. 내린 비는 즉시 돌 틈으로 흘러들 테고 그러다 보니 지하수가 발달할 수밖에. 이 곶자왈에 난대성 한대성 식물이 두루 뒤섞여 우거진 것은 그 물로 인한 2차 효과다. 통기성 좋은 지하공간에서 오는 보온과 보습 효과다. 제주 섬 지하의 광대한 물. 그건 이 곶자왈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곶자왈이 ‘제주의 허파’라고.

곶자왈은 오름을 만든 화산 활동 중에 생긴다. 분출된 용암류가 중산간 지대를 흐르며 곶자왈은 광범위하게 형성된다. 그중 조천∼함덕 것은 길이가 30km에 이른다. 삼다수의 산지인 해발 420m 한라산 아래 첫 마을 교래리(조천읍)도 바로 이곳의 ‘교래 곶자왈’에 자리 잡았다. 곶자왈 숲은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다. 간편하기로는 관광열차가 운행되는 ‘에코랜드’가 좋다. ‘피크닉가든’역 부근에 두 코스(곶자왈 탐방로, 이끼 고사리원)가 있다. 관광열차 운행 구간의 일부도 곶자왈 숲이다.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의 거문오름은 곶자왈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 오름 탐방에 곶자왈 숲코스가 포함됐다. 삼다수 공장 견학을 마친 후라면 부근 선흘곶자왈의 동백동산을 찾는다. 동백동산에선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먼물깍 습지까지 걷는다.

제주=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4D로 본 ‘신들의 섬’
■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문 열어

최근 개장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 설치된 360도 스크린을 통해 보는 한라산 분화 그래픽영상.
최근 개장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 설치된 360도 스크린을 통해 보는 한라산 분화 그래픽영상.
‘뉴 세븐 원더스’의 제주도는 ‘유네스코 삼관왕’이기도 하다.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과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에 모두 지정됐음을 이르는 말이다. 제주 섬이 이 세 개에 모두 들 수 있었던 것은 ‘화산섬’이란 지형 덕분이다. 이렇듯 인류 전체가 보호할 가치로 인정받은 귀중한 자연이지만 이제까지 섬엔 이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인터프레테이션 센터가 없었다. 지난달 문을 연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처음이다.

우리는 세계유산을 10개나 갖고 있다. 그런데 그중 자연유산은 제주도가 유일―나머지는 문화 혹은 복합유산―하다. 구체적으론 ‘제주 화산섬과 화산 동굴계’로 한라산에서도 지정받은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동굴계, 이것만 등재됐다. 이런 화산 활동이 개시된 건 180만 년 전. 그친 것은 불과 1000년 전이다. 센터는 이 장구한 화산 활동은 물론이고 그 결과로 생겨난 오름과 동굴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줄 학습관이자 전시관이다.

센터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것은 바람이 느껴지고 물방울까지 튕기는 21분짜리 4차원(4D) 실사 입체영상이다. ‘신들의 섬 제주’라는 판타지 영상물인데 상공에서 바라본 백록담과 한라산 숲, 동굴과 곶자왈 등 생소하고 신기한 화산 지형이 두루 담겼다. 주제별 전시실(6개)엔 한라산과 거문오름 자료는 물론이고 용암동굴 모형탐사 체험관도 있다. 센터는 거문오름 아래에 있다. 예약하면 거문오름 트레킹도 할 수 있다.

해설사 동반 트레킹 : 5일 전까지 홈페이지(jejuwnh.jeju.go.kr)에서 예약. 하루 300명 선착순. 제주시 조천읍 선교로 569-36(선흘리 478) 064-710-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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