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화조도 패러디… 추사도 단원도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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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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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세밀화 작가 6人 옛그림 ‘환생도’ 기획전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고 난 뒤 소방수가 불에 다 타버린 소나무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황경택 작가의 ‘일상 속 세한도-타 버린 나무’(큰 그림)와 쓸쓸히 유배 간 선비의 삶을 형상화한 원작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작은 그림). 갤러리 가회동 60 제공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고 난 뒤 소방수가 불에 다 타버린 소나무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황경택 작가의 ‘일상 속 세한도-타 버린 나무’(큰 그림)와 쓸쓸히 유배 간 선비의 삶을 형상화한 원작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작은 그림). 갤러리 가회동 60 제공
창문 하나 낸 외딴집, 앙상한 가지의 소나무와 구부러진 나무. 고고하나 쓸쓸해 보이는 선비의 삶을 담아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만화가의 손에 유쾌하게 비틀려 환생했다. ‘식물탐정완두’ ‘꼬마애벌레말캉이’ 등 생태만화를 그리는 황경택 작가(40)는 이 고전을 소방수가 허망하게 쳐다보는 불에 다 타버린 소나무, 고사해서 영양주사를 맞고 있는 소나무로 과감하게 패러디했다.

“처음엔 세한도를 좋아하고 김정희를 존경하는 분들이 보시고 왜 그림으로 장난을 하느냐며 호통 칠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아요. 북촌한옥마을을 둘러본 뒤 갤러리를 찾은 외국인들도 즐거워하더군요.” ‘대중이 범접하기 어려운 세한도를 만만한 만화로 표현해 웃음의 소재로 만들어 보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먹혀든 셈이다.

닮은 듯 다른 옛 그림과 현재의 만남. 원작 김홍도의 ‘화조도’(작은 그림) 속 출신을 알 수 없는 새가 쇠박새로 재탄생한 천지현 작가의 ‘화조도’(큰 그림). 갤러리 가회동 60 제공
닮은 듯 다른 옛 그림과 현재의 만남. 원작 김홍도의 ‘화조도’(작은 그림) 속 출신을 알 수 없는 새가 쇠박새로 재탄생한 천지현 작가의 ‘화조도’(큰 그림). 갤러리 가회동 60 제공
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 ‘가회동 60’에서 열리는 ‘환생도(環生圖)’는 생태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재해석한 옛 그림들을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엔 ‘다시 살아난다(還生)’는 뜻과 ‘환경(環境)’과 ‘생물’의 줄임말이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생태세밀화를 그리는 작가들의 모임인 ‘코드(CODE·colour of drawing for ecology)’의 첫 번째 기획전으로, ‘오래된 민화에 나오는 생물들은 과연 실재했을까’ ‘그 종은 무엇이었으며 지금도 현존하는 생물인가’ 등의 물음에 답하는 전시다.

원작과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해가며 생태학 지식을 쌓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승업의 ‘호응도(豪鷹圖)’에 등장하는 중국산 매를 정용훈 작가는 한국의 ‘참매’로 대체해 그려 넣었다. 김홍도의 ‘화조도(花鳥圖)’ 속 출신불명의 새는 천지현 작가의 그림에선 한국의 쇠박새로 바뀌었다. 황 작가의 ‘짝짓기’는 연못가 앞에서 서로 얽혀 노는 남녀를 그린 신윤복의 ‘청금상련(聽琴賞蓮·가야금을 들으며 연꽃을 감상한다)’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연못을 길게 늘여 연꽃 위에서 잠자리가 짝짓기를 하는 모습을 확대해 그렸다.

정해진 작가는 ‘신모란도(新牡丹圖)’에서 부귀영화를 불러들이기 위해 집 안에 모셔두던 모란도를 벽지의 무늬처럼 사용해 부와 명예의 덧없음을 표현했다. 남계우의 ‘석화접도대련(石花蝶圖對聯)’에서 봄을 상징하는 나비들을 윤영아 작가는 나방으로 대체해 ‘석화아도대련(石花蛾圖對聯)’을 그렸다. 김광식 작가는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 속 미니멀리즘에 반기라도 들 듯 참게를 펜으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자연에 관심 있고 생태 세밀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모인 CODE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기획전 ‘환생도’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 ‘가회동 60’에 모여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있다. 갤러리 가회동 60 제공
자연에 관심 있고 생태 세밀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모인 CODE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기획전 ‘환생도’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 ‘가회동 60’에 모여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있다. 갤러리 가회동 60 제공
CODE의 회원 6명은 ‘복제’라는 세밀화의 한계를 벗어나 수묵 아크릴 만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황 작가는 “생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한계가 있고 의미가 부여돼야 진정한 작품”이라며 “CODE는 앞으로도 유쾌한 웃음과 생태학적인 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CODE는 다음 전시로 △화투 그림 속 생물들과 환경을 월별로 재조명하는 기획전과 △지조와 절개의 사군자(四君子)가 아니라 지혜, 희생, 배려 등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가치를 표현하는 ‘도심 속의 사군자’ 등 다양한 전시들을 계획하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세한도#화조도#패러디#환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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