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컬처] 이지현의 아주 쉬운 예술이야기 세상을 희롱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 “내가 제일 잘났다!”
입력 2012-05-14 18:032012년 5월 14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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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1939년)
나는 천재다! 세상이 나를 존경할 것이다
늘어진 시계, 바다가재 전화기, 허벅지 속 물고기…. 생뚱맞고 난데없는 달리 그림은 참 난해합니다. 16살 때 “나는 천재다. 세상이 나를 우러러 보리라” 라고 일기장에 쓰고는 스스로를 천재라 부르고 다닌 괴짜. 누구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하고, 누구는 돌아이 라고 하는 알쏭달쏭한 인물입니다. 현악기의 f홀이 연상되는 저 독특한 수염을 보세요. 옷차림 역시 해괴해서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고 하죠?
▲ 달리(1960년)
그런데, 기괴하고 난해한 달리 그림이 살아 생전 최고의 그림값을 받았다고 하니 좀 의아한 일입니다. 얼핏 현실 부적응자로 보이지만 세상을 활용해서 잘 사는 방법을 알았다는 얘긴데, 그래서인지 달리 그림을 보고 나면 ‘아주 머리 좋은 사람에게 희롱 당했달까?’ 그런 기분마저 듭니다. “나는 태아였을 때를 기억한다”며 큰소리 뻥뻥 쳤던 달리는 이미지 감추기의 달인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 곳곳에 감추어진 무의식적, 초현실적 이미지를 파헤쳐보는 재미가 쏠쏠하죠. 내가 초현실주의 그 자체
▲ 현악기의 f홀흔히 달리를 ‘초현실주의’ 화가로 부르죠. 프랑스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은 마흔 살 즈음의 달리를 ‘초현실주의 새로운 역군’이라고 찬사를 보냈지만,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돈에 환장한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둘의 불화로 달리는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됐는데, 이때도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라서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며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이렇게 초현실적인 인물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남과 다르다고 기가 죽기는커녕, 개인적 환상에 순수미학을 더해 시대를 지배한 달리. 황당무계할 정도로 “내가 제일 잘났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그는 의외로 명석한 통찰력을 가지고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질서감을 보여줬습니다. 억눌린 욕구를 분출해 엑스터시를 느끼게 하고, 무의식 세계를 영리하게 끄집어내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달리처럼 “내가 제일 잘났다!”라는 주문을 걸고 싶어집니다. 글·이지현(‘예술에 주술을 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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