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내 인생을 바꾼 사람]세상과 싸우기만 하던 나를, 자신부터 돌아보게 만든 그분…

  • Array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판화가 이철수의 이현주 목사

충북 제천시 이철수의 집 뜰에 병아리꽃이 활짝 피었다. 그는 문명의 극단적 발전은 역으로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할 거라고 본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소통에 대해 그는 노래 부르고 싶어 한다. 제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충북 제천시 이철수의 집 뜰에 병아리꽃이 활짝 피었다. 그는 문명의 극단적 발전은 역으로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할 거라고 본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소통에 대해 그는 노래 부르고 싶어 한다. 제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그분이 다녀가시고 나면 으레 책꽂이 한쪽에 봉투가 꽂혀 있었다. 아니면 작업실도 겸하던 조그만 방 한구석에 어느새 놓여 있었다. 열어 보면 1만 원짜리 몇 장, 1000원짜리 몇 장. 가끔 서울에 오시는 길에 받은 원고료에서 차비 얼마를 뺀 전부를 주고 가셨다. ‘칼그림’ 그리는 후배 배곯지 말라는 뜻이셨을 게다. 한편 고맙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조금 자존심이 상해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이현주 목사(68)는 이렇게 조용히 말했다. “나는 형편이 되어서 줄 만하니까 주는 거다. 잘 받는 사람이 남한테 주기도 잘하더라. 받기는 나한테 받았더라도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한테 갚아라.” 1980년대 초반, ‘철없던 청년’ 판화가 이철수(58)는 그 뒤로 좀 더 편안해졌다. 》
○ 굳은 심지

1979년, 육군 병장 시절 걸린 유행성출혈열로 죽다 살아난 이철수는 제대를 하고 친구와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군대에서 ‘나가면 그림을 그려야겠다, 현실에 관해 발언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였다. 답답하고 억압된 시대가 못마땅한, 굉장히 날카로운 청춘이었다.

동행한 친구의 형이 그전에 한번 만나보라고 권한 이현주 목사를 찾아 울진으로 갔다.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좋은 분이라고, 너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하기에 옮긴 발걸음이었다. 밥 사먹을 돈은 떨어지고 한 끼 얻어먹어야지 하고 들어선 죽변감리교회는 마침 비어 있었다. 부슬부슬 비는 내리고 예배당 성가대 긴 의자에 그와 친구는 잠시 누웠다가 곯아떨어졌다. 얼마쯤 잤을까. 누군가가 그들을 깨웠다. 이 목사였다.

“참 잘생긴 사람이었어요. 말씀은 조용하게 하시고, 넘치거나 지나치지 않는데 그 속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속심지를 간직한 분이 서 있다는 느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세상, 갈아엎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현실에 순응할 수 없었던 청년은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술을 엄청 마시고 두서없이 쏟아내는 말들을 이 목사는 넉넉하게 들어주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이철수는 터질 듯한 마음을 이 목사에게 수많은 편지로 써 보냈다. 어김없이 답장이 왔다.

“무명 화가에게 10년 연배 차가 나는 선배가 그렇게 성의껏 답을 해주신 게 놀랍죠. 그분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내 건달 기운도 그 덕분에 많이 빠져나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5·16으로 아버지의 사업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의 가족은 재산을 다 내놓고 빚잔치를 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겨워졌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 건사하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의 원망은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향했다. 민감한 청년기, 그 모든 정황이 납득되지도 이해되지도 않았다. 어머니를 의식하며 너무 멀리 나돌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책임지려는 생각 없이 안에서 충동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이런 조건으로 사회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군대에서 강만길 교수의 책을 읽으며 ‘아버지가 가족에 대한 애정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역사라는 큰 변화가 아버지를 치고 지나간 탓에 이런 결과가 왔구나’ 하는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마음속으로 화해를 했지만, 시대와의 불화는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 목사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평생 선생님이었다.

○ 늘 지켜봐주다

1981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이철수는 80년대 민중미술계의 총아였다. 동학혁명에 관한 연작을 비롯해 현실 참여적 작품을 쏟아냈다. 거리건, 대학이건, 민주화운동 집회에는 그의 작품이 확대돼 내걸렸다. 그는 거칠고 완강했다. 그림으로 무리한 현실을 목청껏 규탄하는 일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에 일종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의 활동에 대해 이 목사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떤 구체적 문제를 두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도 않았다. 이 목사가 그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권유한 적도 없다. 불교의 ‘금강경’을 풀이한 글을 펴내기도 했던 이 목사는 불교 경전에서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찾아내곤 했다.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 가는 과정에서 세속적인 종교적 경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일찍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목사도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고 있었다. “불자(佛者)도 (기독교적)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감리교단의 비난과 압박이 거셌지만 이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고 그로 인해 받는 어떤 불이익도 조용히 감수하는 태도가 참 좋아보였어요.” 이 목사가 살아가고 움직이고 그와 만나면서 몸으로든 말로든 하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늘 가르침이었다.

“나 같은 사람으로 대표되는, 아직 세상을 두 발로 혼자 서기에는 모자라는 친구들에게 따뜻하셨어요.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용히 잘 거들어주신 거죠. 세상과 싸우면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힘 같은 것이 뚜렷하게 보였어요.”

80년대가 저물면서 그는 마음을 생각하게 됐다. 자신 안의 욕심을 스스로 제어할 힘을 갖지 못하면 이 현실과의 싸움이 온전한 싸움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87년 충북 제천으로 내려갔고, 그의 그림은 조금씩 선(禪)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호사가들은 ‘전향’, ‘변절’ 같은 말을 썼지만 그건 아니었다. 여전히 존재하는 부정하고 부패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에는 현실에 관해 따져 물었던 거라면, 지금은 현실이 아프다고 느껴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이 어떤 것에 아파하고 어떤 것을 기꺼워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점점 깊어졌다. 내가 아파하는 문제라면 세상 어떤 생명도 똑같이 아파할 거라는 생각, 그런 마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어느 것 하나 함부로 하기 어려울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가 이렇게 변화할 때도 곁에는 이 목사가 있었다. 결국 겪을 만큼 겪으면 다 알아서 제 길 가겠거니 하는 표정으로 늘 쳐다봐주었다. 이 목사는 지금 그가 사는 곳에서 재 너머에 있는 충주에 살고 있다.

○ 몸과 마음

인터뷰 중에 마을 주민 한 사람이 그의 작업실 문을 불쑥 열더니 물었다. “15일 날 (모) 심는다면서요. 물 댄 거 보니까 알겠어.” 그가 말했다. “갈면 되겠다 싶으면 아무 때나 갈아주세요.” 그는 25년째 농사를 짓는다. 논 닷 마지기에 밭도 그 정도 된다.

그는 지금 우리가 두 가지를 잃어버리고 산다고 걱정한다. 하나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 즉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땀 흘리는 일, 즉 몸이다. 이렇게 된 건 시장의 탓이라고 그는 믿는다. 사람들은 템플스테이니, 명상이니 하는 상품화된 마음을 사고 안심하며, 헬스니 리조트니 하는 상품화된 몸을 사며 안도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성공을 위해 스펙을 쌓으며 자신을 상품화하는 세태가 못마땅하다. 아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상태로 세상이 흘러가게 된다면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싶어요.” 그래서 그는 세상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지난달 펴낸 ‘이철수의 웃는 마음’이라는 책이다. 그는 누누이 말했다. 자신의 그림이 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이 똑같이 겪고 있을 고민을 풀어낼 뿐이다. 그 고민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이 목사를 통해 알게 된 생명운동가 장일순 선생(1928∼1994)이 이렇게 말했단다. “앞으로 받고 옆으로 줘라.” 이철수는 지금 부지런히 옆을 찾고 있다.

제천=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이현주 목사#인터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