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그릇은 음식의 옷, 댁의 밥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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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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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품격을 입는 순간, 끼니가 식사가 되고 식사가 문화가 된다
■ ‘음식과 식기’ 뒤죽박죽된 한국의 食문화를 말한다

차진 잡곡밥을 ‘스댕’(스테인리스) 공기가 아닌 놋그릇에 담아 놓으니 더 먹음직스럽다. 그릇 하나 바꿨다고 음식이 더 맛깔스러워 보이는 것이 정말로 신기하다. 그릇 하나 달라졌다고 기분 좋으면…. 그릇 하나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인생이란 그런 소소한 것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차진 잡곡밥을 ‘스댕’(스테인리스) 공기가 아닌 놋그릇에 담아 놓으니 더 먹음직스럽다. 그릇 하나 바꿨다고 음식이 더 맛깔스러워 보이는 것이 정말로 신기하다. 그릇 하나 달라졌다고 기분 좋으면…. 그릇 하나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인생이란 그런 소소한 것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잘 들어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야. 대접을 좀 해 달라는 거지. 당신들은 여름하고 겨울에 똑같은 옷을 입진 않잖아. 집에서 입던 잠옷 차림으로 결혼식에 간 적도 없겠지. 나도 똑같아. 정성스레 지어놓고선 왜 날 이렇게 볼품없는 스테인리스 그릇에만 담아내는지 모르겠어. 플라스틱 그릇에 패대기쳐진 김치 신세도 별반 나아 보이진 않지만 말이야. 꼭 비싼 그릇에 담아달라는 건 아냐. 그냥 대접받는 느낌, 그래 그런 느낌만 있으면 돼. 사실 어려운 부탁도 아니잖아?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나만 대접받겠다는 게 아냐. 결국엔 당신들 자신이 대접을 받는 거잖아.”

밥의 푸념이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음식뿐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고려 말기 목은 이색 선생이 지은 ‘두죽(豆粥)’이란 시에는 새벽녘 하늘색과 같은 고려청자 그릇에 백 가지 자줏빛과 천 가지 붉은빛을 뿜어내는 팥죽을 담아 먹는다는 대목이 나온다(2011년 11월 발행 ‘공예플러스디자인’ 2호 참조). 1920년대 초 조선총독부 한 사무관이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의 한 마을을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상류 계급은 유기나 백동(白銅)으로 만든 금속제 식기를, 백성들은 사기그릇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그릇 문화는 당시 외국의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그릇만 상 위에 올라온다. 그런데 아무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당신은 밥과 반찬도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가. 누군가는 곧바로 “그걸 누가 몰라서 안 하느냐”거나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며 힐난할 수도 있다. “70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 도대체 무슨 호사를 누리려 하느냐”는 핀잔도 귓전을 때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지금 식사를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끼니를 때우고 있는가.

○ 한국의 문화가 사라진 식탁

“식사는 단순히 ‘먹는 일’이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중요한 의식이다.”(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요리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흔히 이 말을 차용하곤 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것을 담는 그릇과 식탁을 꾸민 장식품, 식사를 준비한 사람의 정성과 예절, 그리고 음식에 담긴 정서와 이야기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식사는 문화’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거다.

오늘날 한국의 밥상은 어떤가. 고깃집이든 찌개집이든 거의 모든 식당에서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플라스틱 반찬그릇을 쓴다. 냉면은 큰 스테인리스 그릇, 국은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 물은 더 작은 스테인리스 컵에 담는다. 가정집 식탁이라고 다르지 않다.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된 밀폐용기가 뚜껑만 열린 채 식탁에 오르기 일쑤다. 그사이 혼수로 장만한 아름다운 식기들은 찬장 안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한국은 도자기의 나라였다. 고려시대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뛰어난 문화적 자산이었다. 오죽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가 ‘도자기 전쟁’을 일으켰을까. 임진왜란 이전 세계에서 당시의 ‘하이테크 제품’인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베트남뿐이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민속학)는 “일본 학계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다른 말로 ‘차완(茶碗·또는 다완·차를 따라 마시는 종지) 전쟁’이라고도 부른다”며 “7년간의 전쟁 동안 일본은 조선 기술자 3만 명 이상을 끌고 갔고, 청자와 백자를 만드는 고령토마저 실어갔다”고 설명했다. 조선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도자기가 일상적인 식기로 활용됐다. 18세기부터는 일반 서민들도 밥상에 도자기를 올리는 모습이 흔해졌다. 또 한국의 그릇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기(鍮器·놋그릇)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공자의 밥상을 따르기 위해 청동기를 동경하던 조선인들은 임진왜란 후 함경도에서 구리가 발견되자 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을 두드려 만든 식기를 ‘방짜유기’라 부르는데, 이는 유럽의 주물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18세기부터는 조선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주물 방식으로 유기를 만들어내 웬만한 부유층에서는 대부분 유기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20세기 초까지 유기는 식기의 으뜸이었을 뿐 아니라 제기(祭器)로도 크게 각광받았다.

문제는 이런 전통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모두 끊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요업이 산업으로 육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의 근대화된 대량 생산 도자기 제품이 밀려들자 버텨낼 힘이 없었다. 궁중음식 연구가인 한영용 청운대 겸임교수(식품영양학)는 “전통 도자기의 맥이 끊어진 상황에서 광복 후 실용적인 서구 문물이 유입되자 거의 모든 대중식당에서 식기를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로 대체해 버렸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외식문화가 처음 생긴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중국(16세기)이나 일본(18세기)에 비해 역사가 무척 짧다. 이렇듯 외식산업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전이다 보니 편리성이나 내구성, 가격 등의 면에서 우수한 스테인리스가 순식간에 식탁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 광복 후 도자기 문화 꺾이고 스테인리스-플라스틱 뒤덮여 ▼

그릇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릇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신이 담아낸 음식이 가장 빛날 때이다. 음식과 그릇은 크기, 모양, 빛깔, 질감 등 외모도 어울려야 하지만 각자가 담고 있는 정서나 스토리에서도 교감을 이뤄야 한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광주요 제공
그릇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릇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신이 담아낸 음식이 가장 빛날 때이다. 음식과 그릇은 크기, 모양, 빛깔, 질감 등 외모도 어울려야 하지만 각자가 담고 있는 정서나 스토리에서도 교감을 이뤄야 한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광주요 제공
주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유기나 청자, 백자 등 전통 그릇들은 식기로서의 쓰임이 줄어들고 ‘비싼 골동품’으로만 여겨지게 됐다”며 “정말 안타깝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 음식을 빛내야 좋은 그릇이다

“요리는 음식의 품질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다. 품질에 걸맞은 다양한 서비스가 덧붙어야 한다.”(프랑스 요리사 앙드레 다갱)

70여 년간 곰탕을 끓여온 서울 명동의 한 음식점에선 철저히 방짜유기를 고집한다. 이 놋그릇은 주인장이 끓여낸 곰탕의 온기를 손님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유기는 나쁜 균을 없애 준다니 위생적으로도 더 믿음이 간다. 다만 놋그릇은 관리하기가 어렵다. 광택을 유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한번 녹이 슬면 닦아내기가 만만찮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놋그릇에 음식을 담아내는 주인의 정성이 더 고맙다. 이렇듯 좋은 그릇은 음식은 물론이고 음식을 만든 사람까지 빛낸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최근 펴낸 ‘조태권의 문화보국’(김영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도자기 선진국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진화해온 고유의 의식주가 있고, 그 정체성을 중심으로 찬란하고 남다른 생활문화를 꽃피웠다. 그들의 도자기는 음식을 담는 식기의 기능뿐 아니라 음식의 가치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문화적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음식이 몸이라면 그릇은 옷이다.’

예쁜 옷은 사람의 모습을 훨씬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아무리 비싼 옷이라도 그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 회장이 설명한 좋은 그릇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좋은 그릇이라면 첫째 음식을 담았을 때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릇 자신이 폼이 나는 게 아니라 음식이 폼이 나게끔 해줘야 하는 것이죠. 200만 원짜리 그릇이라도 음식이 죽어버리면 그 음식에만큼은 좋은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여름에는 시원해 보이는 백자를 선호했고, 겨울에는 보온성이 좋은 유기를 많이 썼다. 음식이라는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 그릇이라는 조연을 적절하게 활용한 지혜다. 물론 음식과 그릇의 궁합에 정답이 있진 않다. 한 음식에 꼭 맞는 그릇이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식문화가 형성되는 것도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음식문화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음식이나 도자기를 복원한다고 할 때도 현대라는 시대적 특성을 모두 무시할 수 없다.

한 교수는 “요즘 한식은 예전과 달리 매우 단순해지고 있다. 그릇 역시 음식과 함께 변화를 거듭한다”며 “그릇은 다른 문화권에서 유입된 음식을 위해 새롭게 탄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음식 문화의 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좋은 그릇에는 이야기가 있다


‘셰프의 그릇’(모요사·2010년) 저자인 7년차 요리사 김광선 씨(35)는 그릇을 통한 소통을 강조한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릇으로 영국의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스타요리사 고든 램지의 스승)라는 요리사의 것을 꼽았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 중 한 명인 그는 런던에 있는 식당에서 금테가 둘러진 단순한 모양의 그릇 딱 한 가지만을 사용한다. 모양도 크기도 똑같다. 김 씨는 “담긴 음식에 따라 같은 접시도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이는 곧 음식에 대한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접시가 셰프의 마음을 대변하는 셈이다.

‘스시(초밥)의 전쟁터’인 일본 도쿄 긴자거리에서는 ‘다이와 스시’의 나무도마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에선 세련미와 정갈함, 포근함을 모두 갖춘 부챗살 모양의 스시를 ‘잡았을 때’ 최고의 요리로 인정받는다. 이 모양의 스시가 나무도마에 살포시 얹어지면 포근함은 더 커지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도 연출된다. 나무도마가 여느 비싼 도자기보다 더 훌륭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마의 나무가 밥의 수분을 흡수해 스시를 더 맛있게 만들기도 한다. 김 씨는 5월 중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거리에 유럽식 레스토랑을 열 예정이다. 그는 이를 위해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최고의 그릇들을 모아왔다. 그릇 값만 1000만 원이 훌쩍 넘게 들었다. 김 씨는 “직접 개발한 음식에 맞는 다양한 그릇으로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계획”이라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한국의 전통그릇에 서양의 스테이크가 가진 거친 느낌을 더하면 의외의 조화로운 분위기가 나올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젠 우리 집 식탁에도 이야기를 담은 그릇을 꺼내놓는 건 어떨까. 수백 년째 가업을 이어온 해외 명품 도자기일 필요는 전혀 없다. 경기 이천의 도자기 공예가들이 만들어 낸 예술품들이 아니어도 좋다. 한식에 어울리는 그릇은 한국적 정서가 들어간, 그리고 한국의 정서를 살려낼 수 있는 그런 그릇이면 된다. 그리고 우리 집 식탁에 어울리는 그릇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그릇이면 족하다. 동네 공방에서 직접 만든 나만의 작품도 괜찮다. 조악하지만 개성이 넘칠 테니까. 대중식당들도 주력 음식과 궁합이 맞는 색깔과 모양의 그릇을 준비해 새로운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값이 비싸서” “잘 깨져서” “설거지하기 힘들어서” 따위의 변명들이야말로 한국 식문화를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한식 세계화를 위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도 음식 자체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음식을 지탱해 주는 그릇과 그 사이를 연결하는 스토리의 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아가 ‘바람직한 한식문화’에 대해서도 빠른 시간 내에 재정립하는 작업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영하 교수의 한마디가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 우리도 질적 수준이 높은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을 쓰는 것은 스스로를 귀한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식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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