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조태권 광주요 회장 “식탁 위에도 국격이 있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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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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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권 광주요 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릇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가 든 술잔은 가야인들이 처음 고안했다는 ‘방울잔’으로 술을 마신 뒤 빈 잔을 흔들면 도자기 방울이 움직이면서 소리가 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조태권 광주요 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릇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가 든 술잔은 가야인들이 처음 고안했다는 ‘방울잔’으로 술을 마신 뒤 빈 잔을 흔들면 도자기 방울이 움직이면서 소리가 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대전 엑스포가 열렸던 때니까 1993년쯤일 겁니다. 일본에서 13대째 도자기 가업을 이어온 한 집안의 부인이 저희 부부를 점심에 초대했어요. 가장 먼저 시아버지대에 만들었다는 그릇 세트를 전부 꺼내는 거예요. 그러고서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이 그릇으로 우리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하더군요.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정성으로 만들었으니 음식도 당연히 맛있었죠.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귀중함’과 ‘가치’를 선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64)이 기억하는 ‘가장 감동적인 그릇’ 이야기다. 한국에서 그릇을 논할 때 이 사람을 빼놓을 순 없다. 1988년 부친인 고 조소수 선생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그는 광주요를 국내 굴지의 도자기 기업으로 키워냈다. 지금은 ‘한식 세계화’를 위해 사재를 털어가며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중이다.

○ 대중식당도 가치경쟁이 답이다

조 회장이 20년 전의 감동을 여전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릇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릇은 음식의 품격을 결정한다. 나아가 국민이 품격 있게 먹어야 나라의 품격도 올라간다”고 정의한다.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조 회장으로부터 음식과 그릇, 그리고 한식 세계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제대로 된 한식문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문화를 산업으로 보지 못한다. 식당 하나에도 음식의 콘셉트와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그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독특한 인테리어와 그릇, 서비스가 필요한 것이다. 세계적인 한식당을 만들려면 외국인이 식사를 하면서 이게 한국 건물이구나, 한국 예절이구나, 한국 그릇이구나, 한국 음식이구나, 한국 음악이구나, 한국 정서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조 회장은 “우리나라에는 한식을 만드는 문화생산 공장이 40만 개”란 말을 반복했다. 40만은 한식을 주 메뉴로 삼는 식당 수다. 하지만 음식과 인테리어, 서비스를 제대로 갖춘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도 한국의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비싸야 한다는 건 아니다”라며 일방적인 해석을 경계했다. 고급식당은 고급스럽되 서민식당은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음식과 제대로 된 그릇으로 서비스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야 식당에도 수직적 다양성이 생기고, 비슷한 식당들끼리 ‘가치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고급문화만 지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음식은 그릇에 담겨 나왔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집안이든 식당이든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먹는다면 ‘우리 문화는 저급문화입니다’라는 걸 광고하는 것밖에 안 된다.”

이 대목에서 유난히 목소리를 높인 그는 한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현재의 한류가 정말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드라마나 음악을 통해 돈이 들어오니까 한류가 성공했다고 하지만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해외로 수출된 드라마들을 보라. (사극이 아니면) 부잣집은 모두 서양식이다. 음식도 그릇도 서양식이다. 술도 코냑이나 와인, 위스키만 마신다. 그런데 주인공이 상처를 받으면 전부 포장마차에 간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에서의 고급문화는 모두 서양문화고, 한국문화는 모두 하류문화라고 보지 않겠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것이다.”

○ 한식 세계화의 도전은 계속된다

조 회장은 2003년 11월 고급 한정식당 ‘가온’을 차렸다가 5년 만인 2008년 말 문을 닫았다. 광주요의 고급 도자기에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차려내는 ‘한국 음식문화의 정수’를 표방했지만 늘어나는 적자를 견디지 못했다. 홈그라운드에서의 실패는 ‘원정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중국 장자강의 2호점에 이어 베이징 3호점도 2010년 초 문을 닫았다.

―왜 한식 세계화에 뛰어들었나.

“불행히도 내가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 없이는 안 되겠다는 걸 내 눈으로 봐 버렸다. 그런 게 보였기에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했고, 보였기에 (내 재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선례를 남겼다. 그렇게 남겨진 유산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의 야심 찬 실험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베이징 가온은 ‘가온 홍삼 삼계탕’이란 이름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연내에 다시 ‘가온’을 열 계획이다. 다만 30석 정도만 만들어 철저히 예약제로만 운영한다는 복안이다. 최고의 요리사들이 개발한 한식 메뉴를 실전에서 검증받고, 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결국 한식의 고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인가.

“모든 문화의 가치는 결국 그 나라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세계화를 하려면 우리 국민의 의식주 수준부터 세계적으로 올려야 한다. 국익을 위한 ‘사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대중문화를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그릇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한국의 그릇은 ‘자연’이다. 우리는 모든 음식을 자연과 어울리게끔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음식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자연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기에 우리 그릇들은 항상 단순했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인위적으로 크게 만들지도 않았다. 19세기 후반 육식을 허용하면서 식기가 엄청나게 변한 일본이나 고기 위주의 음식문화에 맞춰 그릇을 화려하게 만든 유럽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음식과 궁합이 좋은 그릇은 어떤 그릇인가.

“나는 음식을 만들면 그 음식을 어떤 모양과 색깔의 그릇에 담을까를 계속 고민한다. 반대로 음식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지 못한다. 옷을 만들 때는 입을 사람을 상상하며 만들지 않나. 음식과 그릇은 그런 관계다.”

조 회장은 우리 식문화가 나아가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정체성 확립’을 꼽았다. 100년 전에 이미 명맥이 끊어진 전통에만 매몰되다 보면 ‘현대의 가치’가 결여된 반쪽짜리 문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직접 발로 뛰면서 경험했기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기에 백발노인의 이야기에 작지 않은 울림이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한식#조태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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