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어디선가 본 듯한 사찰과 불상… 천년 넘은 한류의 잔향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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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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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도 간사이 지방을 가다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으로의 여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로 광속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준다. ‘과거여행객’으로 분주한 고도(古都)는 세상에 수없이 많지만, 사흘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은 간사이 지방이 제격이다. 그저 비행기에 한 시간 남짓 몸을 맡기면 된다.

간사이 지방에선 돈이 많이 필요 없다. 그저 거닐기만 해도 문화의 향이 느껴진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요미즈데라(淸水寺), 도다이지(東大寺·동대사) 청동불상, 아름다운 긴카쿠지(金閣寺)의 황금누각.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간사이 지방에선 돈이 많이 필요 없다. 그저 거닐기만 해도 문화의 향이 느껴진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요미즈데라(淸水寺), 도다이지(東大寺·동대사) 청동불상, 아름다운 긴카쿠지(金閣寺)의 황금누각.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나라, 낯설지 않은 땅

간사이공항에 도착해 바로 찾아 간 곳은 아스카(飛鳥) 문화의 발원지인 나라(奈良)이다. 나라는 서기 710∼784년까지 일본의 수도로 불교 전성기 때의 수많은 문화재들을 간직하고 있다. 나라에 문화를 전수하고 꽃피운 주인공은 한반도 도래인(渡來人)이다. 삼국에서 건너온 이들은 선진문물을 바탕으로 초기 일본을 발전시켰다. 한류의 원조라 부를 만하다.

보통 간사이 지방 여행은 나라에서 시작되고, 나라 여행의 출발지는 도다이지(東大寺)다. 이곳은 대불(大佛)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으로 유명하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다이지는 서기 745년 쇼무 일왕의 발원으로 건립된 일본 최대 사찰로 국고가 바닥날 만큼 천문학적인 건축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목조건물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불상 역시 육중한 크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높이 16.2m, 무게 약 250t에 이르는 비로자나불이다. 웅대한 기상과 유려한 장식, 온화한 표정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선조들이 만든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사찰은 헤이안 시대(794∼1185) 말기와 센고쿠 시대(15세기 후반∼16세기 후반)에 두 번의 전란으로 인해 많은 가람을 소실했다. 대불전을 비롯해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상당수가 에도시대(1603∼1867)에 재건됐다.

교토, 천년 고도의 여유

이튿날 교토(京都)를 찾았다.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된 길, 2000개가 넘는 수많은 신사와 사찰, 왕궁, 정원이 1000년 수도의 자존심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성스러운 물줄기가 흐른다는 절. 이곳을 보지 않고는 교토를 보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대표적인 명승지다. 780년에 세워졌는데 백제인의 후손이 지었다는 설이 있다. 사찰 입구를 들어서면 손과 입을 헹구는 곳이 눈에 띈다. 몸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사찰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본당이다. 깎아지른 절벽 경사면 위에 높이 15m의 거대한 목조기둥 139개를 세워 지은 본당은 그 건축법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아래로 교토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한쪽에서 사람들이 물을 받아 마시느라 왁자지껄하다. 사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석재 수구를 따라 세 개의 물줄기로 갈라지는데, 각각 지혜와 사랑, 장수를 의미한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마셔야 된다고 한다. 만약 욕심을 부려 세 개를 다 마시면? 조심하시라. 바보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니 말이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한 것이리라.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옛 목조건물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장 교토다운 길, 산넨자카(三年坂)와 니넨자카(二年坂)를 만나게 된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쳐나 한번 들어서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 하지만 구경하는 데 정신 팔려 넘어지면 안 된다. 이름 그대로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긴카쿠지(金閣寺). 눈부시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곳이다. 황금누각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1397년 무로마치막부의 한 장군에 의해 별장으로 지어진 후 선종사찰로 바뀌었다. 1950년 절의 아름다움을 질투한 젊은 수도승의 방화로 소실된 후 1955년 재건됐는데,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이를 소재로 하여 쓴 동명의 소설 ‘금각사’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3층에 금박으로 덮은 석가의 사리전이 있어 금각사라고 부른다. 외부만큼이나 내부 역시 화려하다고 하는데 비공개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이 사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정원이다. 본래 로쿠온지(鹿苑寺)라는 이름을 가진 절답게 연못과 짙푸른 숲으로 이루어진 정원에는 부드러운 이끼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그림 같은 이 풍경을 놓칠세라 관광객들 틈에 끼어 ‘교토방문인증 사진’을 찍어본다. 물론 연못에 비친 누각을 잘리지 않게 찍는 것이 포인트다.

오사카, 아픈 역사 속의 한류


오사카(大阪)는 간사이 지방의 대표적 상업도시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 번화한 도시는 400여 년 전 한 권력자가 야욕을 불태운 곳이기도 하다.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아니던가.

1582년 천하의 패권을 움켜쥔 도요토미는 1년 뒤 오사카 성을 축성하고 본성으로 삼았다.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의 하나로 꼽히는 오사카 성은 당시 금박 기와, 금장식을 붙인 천수각 등으로 호화롭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성의 외부는 막부권력의 중심지였던 만큼 철옹성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108t에 이르는 거석을 그대로 사용한 두꺼운 성벽,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파놓은 해자 등등. 하지만 세월과 역사의 흐름 속에 성은 수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 1931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돼, 지금 성의 내부는 역사박물관으로서 관광객을 맞고 있다. 성을 나오며 문득 해자를 보니 수면 위에 빌딩 숲이 물결친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한때 한반도 침략의 근거지였던 오사카는 오늘날 한류의 주무대가 되었다. 4만5000명을 수용하는 초대형 공연장 교세라돔에서는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스타들의 공연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나라·교토·오사카=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교토의 기모노 대여점,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

교토의 니넨자카 거리에는 기모노 차림을 하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교토의 니넨자카 거리에는 기모노 차림을 하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교토에는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거니는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눈에 띈다. 기모노를 대여해주는 가게가 여러 곳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삼아 대충 걸쳐보는 것이 아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변신(?)해서 하루(보통 오전 9시∼오후 7시·가게마다 시간 다름) 동안 관광을 할 수 있다. 서울에도 한복을 빌려주고 체험하게 하는 전문점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여점에서 우선 자신이 원하는 기모노를 선택한다. 그런 다음 옷에 어울리는 오비(허리에 두르는 띠), 액세서리, 신발, 가방을 고르면 숙련된 전문가가 ‘기쓰케’를 해준다. 기쓰케는 맵시 있게 기모노를 입혀주는 것을 말하는데 전문자격증까지 있다고 한다. 원래 기모노는 혼자 입기 힘든 옷이라고 하는데 직접 입어보면 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지 곧 깨닫게 된다. 과거 기모노가 평상복이었을 일본 여성들의 수고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름 모를 수많은 천 쪼가리를 둘러 입는 과정 자체도 재밌다. 머리 스타일도 추가로 선택해서 다양하게 치장할 수 있다.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 다 입으면 밖으로 나가 고풍스러운 교토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누비면 된다. 기모노 렌털 비용 5000엔(약 6만9000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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