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2>삶의 냄새, 집냄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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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편액. 동아일보DB
도산서원 편액. 동아일보DB
생선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 냄새가 난다. 당연히 집에도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진한 삶의 냄새가 배어 있다. 노동자의 집에서는 노동의 냄새가, 학자의 집에서는 책 냄새가 난다.

그러나 이것은 옛말이다. 요즘처럼 물신주의가 판치는 때, 집에 배어 있는 삶의 냄새는 온데간데없다. 삶이 사라지고 상업자본주의가 꾸며 놓은 환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본의 위력은 한 가족 내에서도 한 세대의 가치가 그 다음 세대에 이어지는 것을 막고 있다.

아무리 고고한 학자라도, 아무리 정직한 노동자라도 그 가치는 지금, 항상 당대에 끝나고 만다. 노동의 가치를 아들에게 힘주어 말하기에는, 학자적 양심을 딸들에게 물려주기에는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이 전부인 가치 부재의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 사는 집에서 삶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집의 냄새는 거기 사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냄새이고, 그것이 바로 삶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의 집에서는 아직도 퇴계의 유연한 정신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남명 조식의 집에서는 아직도 서슬 퍼런 기가 흐른다. 그 집을 지은 사람의 생각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창문에서, 기둥에서, 집이 바라보고 있는 방위에서 읽을 수 있다.

이발사는 손님의 머릿결을 보고 그 사람의 생을 짐작하고, 치과의사는 환자의 치아를 보고, 신기료장수는 손님의 발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짐작한다고 한다. 그렇듯이 건축가인 나는 그 사람의 집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런 짐작을 할 엄두도 못 낸다.

비슷비슷하지도 않은 아예 똑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 거기다 가구의 모양, 주방의 생김새, 현관의 모양까지 다 똑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인가를 읽으려면 점쟁이 수준은 되어야 한다. 내가 지금 우리 집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불안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면 불안해지는 게 지금 우리다. 불안해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불안해서 명품을 사고, 불안해서 유행을 따른다. 그런 불안은 읽고 싶지 않다.

깊은 사색을 통해 삶을 완성하고자 했고, 그런 사유를 집에 자연스럽게 드러낸 옛사람들의 가치가 부럽다. 조선집을 거듭 살펴보는 이유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고고학자#물신주의#퇴계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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