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지루할 때쯤… 지바고와 라라의 애절한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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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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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닥터 지바고’ ★★★★

러시아혁명기에 꽃핀 시적 사랑을 그린 뮤지컬 ‘닥터 지바고’. 라라의 남편 파샤(강필석·앉아있는 사람 중 오른쪽)는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 순수한 이론가에서 냉혹한 투사로 변신하며 낭만적 휴머니스트인 라라의 연인 지바고의 대척점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러시아혁명기에 꽃핀 시적 사랑을 그린 뮤지컬 ‘닥터 지바고’. 라라의 남편 파샤(강필석·앉아있는 사람 중 오른쪽)는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 순수한 이론가에서 냉혹한 투사로 변신하며 낭만적 휴머니스트인 라라의 연인 지바고의 대척점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초등학교 시절 TV로 봤던 영화 ‘닥터 지바고’(1965년)는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몇 장면의 이미지만은 20여 년 세월을 살아남았다. 러시아의 광활한 자연, 얼음으로 뒤덮인 저택, 수염까지 얼어버린 주인공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의 얼굴…. 이런 강렬한 이미지는 영화를 빛낸 또 다른 요소였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원작소설을 극화한 뮤지컬은 이 강렬한 자연 풍광과 이미지를 제한된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지난해 초 남미 이구아수 폭포를 재현한 거대한 세트에도 불구하고 영화 장면과 비교해 초라하게만 느껴졌던 뮤지컬 ‘미션’의 실패를 이번 뮤지컬은 영리하게 비켜갔다.

뮤지컬은 모방한 이미지들로 무대를 채우지 않았다. 그 대신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듯 단순하고 상징적인 무대를 만들고 그 빈 공간을 관객 자신이 상상력으로 채우도록 했다. 바닥은 객석 방향으로 4.4도 기울였고 기하학적 패턴을 넣어 원근감을 부여했다. 극 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기차도 ‘기차라는 느낌’만 풍길 정도로 단순하다.

장면과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빠르게 전환되는 신선한 무대 연출도 단순한 무대 덕분이다. 조명 효과와 몇 가지 무대 소품을 더하고 빼는 것만으로 장면 변화가 충분했다. 그 덕분에 다소 숨 가쁘게 진행되기는 하지만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2시간 20분 동안 영화(3시간 17분) 속에 그려진 지바고의 파란만장한 삶 대부분을 담아냈다.

사실 2시간 20분은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주요 배역들의 캐릭터들을 입체감 있게 구축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낭만적인 휴머니스트이면서 고집스러운 지바고, 요부와 성녀이면서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진 라라, 모범생 타입의 순수한 청년에서 볼셰비키 혁명의 냉혹한 빨치산 지도자로 변신하는 파샤, 권력과 부를 이용해 어린 라라를 탐하지만 후에 라라를 구해주는 고위 법관 코마롭스키 등 누구 하나 단순한 인물이 없다. 이 인물들의 입체감을 뮤지컬이 풍부하게 구현하지는 못한다. 이야기가 성긴 느낌도 준다. 비슷한 방식의 무대 전환과 비슷한 톤의 음악이 반복되면서 1막과 2막 후반부엔 피로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이 가차 없이 무시되고 폄하되는 혁명과 이념의 시대에 고집스럽게 열정적으로 한 여성을 사랑하고 이를 영감 삼아 꽃 같은 시(詩)로 피워내는 지바고의 삶 자체가 어느 순간 졸린 눈을 비비던 관객의 가슴을 찌르르 파고든다. 유리와 라라가 듀엣으로 부르는 러브테마 곡 ‘나우(Now)’의 선율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감동을 주는 뮤지컬을 만난 게 얼마만인가.

주말 공연은 가족 단위 관객으로 북적였다. 진정한 가족 뮤지컬의 등장이 반갑다. 역량 있는 배우들의 성장한 모습을 확인한 것도 수확이다. 지바고 역의 홍광호 씨는 선이 굵은 가창력의 소유자였지만 이번 작품에선 노래에서 감정의 섬세한 완급 조절을 제대로 발휘했다. 라라 역의 전미도 씨는 요부의 이미지는 약했지만 사랑하는 여성의 모습은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해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라라 역은 김지우 씨와 전미도 씨가 번갈아 연기한다. 지바고 역에 조승우 씨가 합류하기로 했지만 출연 일정은 미정이다. 6월 3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샤롯데씨어터. 7만∼13만원. 158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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