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2]그들, 작가인생 징검다리에 서다

  • 동아일보

“한국 문단에 신고합니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당찬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시나리오의 전호성, 단편소설의 
김혜진, 동화의 이진하, 시의 안미옥, 희곡의 신비원, 시조의 황외순, 중편소설의 김영옥, 영화평론의 김정(본명 김혜란) 씨.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국 문단에 신고합니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당찬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시나리오의 전호성, 단편소설의 김혜진, 동화의 이진하, 시의 안미옥, 희곡의 신비원, 시조의 황외순, 중편소설의 김영옥, 영화평론의 김정(본명 김혜란) 씨.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태어나 처음 쓴 희곡 작품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은 대학교 1학년생, 20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하며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습작을 해온 미용사, 7년 동안 단편소설로 신춘문예에 지원하다 중편으로 바꿔 지원한 첫해에 당선된 작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당선 뒷이야기를 들으면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 같다.

이번 신춘문예 지원자 2426명 가운데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단 8명. 시, 단편소설 등 총 9개 부문에서 경합을 벌였지만 아쉽게도 문학평론 부문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기념촬영을 위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당선자들은 아직도 당선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당선자들의 나이는 20대 4명, 40대 4명으로 양분됐다.

○ 느닷없는 당선 통보,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희곡 당선자인 신비원 씨(23)의 당선작은 기말고사 과제였다. 서울예대 극작과 1학년인 신 씨는 ‘희곡 작품 하나를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택배 영수증을 제출하라’는 조광화 교수의 엄명에 부랴부랴 3주 만에 초고를 탈고했다. 하지만 일이 생겼다. 원고가 들어 있던 노트북을 분실한 것. PC방에 틀어박혀 일주일여 만에 다시 원고를 완성해 간신히 신춘문예에 지원할 수 있었다. 물론 난생처음 쓴 희곡작품이다.

학교 앞 PC방에서 대학 동기들과 카트라이더를 하다 당선 통보를 받은 신 씨의 첫마디는 “나 어떡해∼. 진짜 동아일보 맞아요?”였다. 같이 게임하던 친구들의 반응은 “이럴 수가!!”

신 씨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드라마 대본, 단편 소설, 시나리오 등을 습작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발표한 것이 없었다. 아직도 꿈결 속에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4학년인 동화 당선자 이진하 씨(24)는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졸업 선물을 받게 됐다. 지난해 12월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에 당선된 그는 걸출한 수상 경력을 안고 사회에 나서게 됐다.

“엄마와 칼국수를 먹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어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내려놓았는데 손이 덜덜 떨리더군요. 졸업 전에 등단이 돼서 기쁘지만 부담도 돼요.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 당선자인 안미옥 씨(28)는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지원하기 전 서류봉투 10개를 샀다. ‘봉투를 다 사용하기 전에 꼭 등단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 한꺼번에 산 봉투가 무색할 정도로 ‘작심하고 지원한’ 첫해에 당선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온 그는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며칠째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어요. 꿈속인 것 같아 처음엔 덤덤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장이 막 뛰었죠. 제대로 준비해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은 처음인데 매우 기뻤습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깊게, 꾸준하게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영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소설을 쓰고 싶어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시 입학해 졸업한 김혜진 씨(29)는 단편소설에 당선됐다. 소설 쓰는 게 생각보다 너무 괴로워서 고민도 많이 했다는 김 씨는 통보를 받고 ‘아, 이제는 어쩌지’ 하는 막연한 걱정부터 들었다고 했다.

“박기동 선생님(서울예대 교수)께서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놀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소설과 소설 속 인물, 소설을 쓰는 저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싶고, 성실하게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조 당선자인 황외순 씨(44)는 지난해 말에 운이 없었다. 10여 년간 경북 경주시 외동읍에서 운영하던 미용실인 ‘내가 잘 가는 미용실’이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도로가 나면서 지난해 11월 철거됐다. 당선 통보를 받기 몇 시간 전에는 집안에 작은 화재가 났다.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긴 가운데 당선 통보를 받아 더 기뻤어요.”

미용 경력 20년인 황 씨는 손님이 없는 틈틈이 미용실 한편에서 습작을 했다. 경주문예대에서 1년간 문학 기초를 닦은 것이 전부. “미용실 일을 하면서 자리를 비우기 힘들어 취미 삼아 시를 쓰기 시작한 게 등단까지 이어졌다.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주변 이야기, 그 속에 산재해 있는 따뜻함을 시로 풀어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황 씨는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도 당선돼 2관왕에 올랐다.

김영옥 씨(47)는 중편소설 당선으로 재등단하게 됐다. 4년 전 한 지역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지만 청탁은 1년에 한 번 받기도 힘들었다. 다시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를 노크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단편만 쓰던 김 씨는 첫 중편에 도전했고 이번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단 한 줄이라도 용기를 얻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장르를 넘나들다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당선자들도 있다. 영화평론 당선자인 김정(본명 김혜란·46) 씨는 서울대 동양화과, 서강대 대학원 영상학 석사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영상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술과 영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손하게’ 풀어내는 솜씨에 심사위원으로부터 “당장 평론계로 나와도 손색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김 씨는 “창작과 비평을 겸해온 일련의 군단(누벨바그 등)으로부터 깊은 감흥을 받아 많은 습작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치열하고, 사려 깊고,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캐나다 유학 때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지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전호성 씨(43)는 시나리오에 당선됐다.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자연스레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혼자 간직하던 글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던 것. 귀국해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간 그는 시나리오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게 내게도 일어나는구나 싶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이면에 있는 것들에 관한, 울림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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