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무대도, 객석도 숨이 가빠온다

  • 동아일보

◇ 다원예술 ‘휘트니스 가이드’ ★★★☆

다원예술 아티스트 정금형 씨는 헬스클럽 운동기구를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했다. 정금형 씨 제공
다원예술 아티스트 정금형 씨는 헬스클럽 운동기구를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했다. 정금형 씨 제공
‘초보자가 피해야 할 동작, 각종 운동기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등을 알아보고 올바른 운동법과 그릇된 운동법을 구분하는 기본적 안목을 키워 보자.’

다원(多元)예술 아티스트 정금형 씨의 신작 공연 전단에 나온 공연 소개 문구다. 18∼20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오른 공연의 제목은 ‘휘트니스 가이드’. 전단의 일상적 문구와 달리 이 공연은 일상의 공간을 비틀어 낯설게 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진공청소기, 유압진동기 같은 사물에 인성(人性)을 주고 이 사물들과 교감하는 내용의 실험적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아온 정 씨는 이 작품의 배경을 피트니스센터의 GX(그룹운동)룸으로 설정했다. 공연장 중앙엔 객석 대신 1인용 요가 매트를 줄 맞춰 깔았고 그 주변에 운동기구들을 배치했다.

스포츠 브래지어와 몸에 달라붙는 운동바지 차림의 정 씨가 등장해 기구를 하나씩 돌며 성적(性的) 코드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60분간 공연의 전부다. 조명 효과도, 음향 효과도 없이 정 씨는 오로지 자신의 동작과 동작이 내는 소리로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는다. 관객이 어찌나 숨을 죽였는지 가쁘게 내쉬는 정 씨의 호흡이 그대로 충분한 무대 음향이 됐다. 사람의 머리 조형물을 달아 인성을 부여한 기구들이 정 씨의 퍼포먼스에 따라 진짜 생명을 얻은 것처럼 느껴져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인형 두상이 없는 보통의 러닝머신과도 정 씨는 교감했다. 러닝머신의 속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걷는 속도가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다가 결국 한계에 도달해 딱 멈춰버리는 과정이 성적 뉘앙스 가득하게 펼쳐졌다.

운동기구를 다 돈 다음 정 씨가 체중을 재고, 체지방 분석기를 사용한 뒤 결과를 프린트하는 것으로 공연은 끝났다. 여성의 은밀한 자위행위를 대낮에 공개적으로 엿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내 몸이 어떻게 생명 없는 인형을 움직이게 할까, 내 몸이 인형으로 인해서 어떻게 움직일까 하는 시도의 연속선에 있다. 내 몸을 재료로 오브제가 살아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정 씨는 말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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