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참전용사 5년째 초청 용인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 동아일보

“한국 위해 귀중한 젊음 바친 이유 발전 모습 보고 알게 됐다 하네요”

최근 영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을 출간한 소강석 목사는 “개신교는 말씀과 계시의 종교라는 특성 때문에 글과 소통에 취약하다”며 
“교회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소통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최근 영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을 출간한 소강석 목사는 “개신교는 말씀과 계시의 종교라는 특성 때문에 글과 소통에 취약하다”며 “교회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소통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00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참전용사를 만났습니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푸른 눈, 백발의 참전용사에게 소강석 목사(49·경기 용인시 죽전동 새에덴교회)는 대꾸를 못한 채 한국식 큰절을 했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의미였다. 또 교회에서 참전용사를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참전용사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그의 약속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다. 올해에는 15∼20일 참전용사와 가족 등 40여 명이 한국을 찾아 판문점과 용산 전쟁기념관, 한미연합사 등을 방문한다. 17일에는 천안함이 전시돼 있는 평택 2함대를 둘러본다. 22일에는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연회장에서 미국 정관계 인사들과 참전용사들이 참여하는 한미 우호행사를 갖는다.

정부를 대신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이들을 초청하는 이유를 묻자 10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소 목사는 한 노병의 눈물 어린 소감을 전했다.

“젊은 시절 참전했지만 솔직히 내가 왜 싸웠고, 왜 부상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눈부시게 발전한 이 나라를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 출신인 그는 맨몸 맨손 맨땅의 ‘3M 목회자’를 자처한다.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한학자인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열아홉 살에 집에서 쫓겨나 수박과 오이장사, 막노동판 등을 전전했고 1988년 교회 개척 이후 신자 3만여 명의 대형교회를 일궈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책 ‘영혼의 글쓰기’ 서문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사람들은 투박한 나의 외모만을 보고 어떻게 인텔리들이 모여 있는 신도시에서 기하급수적인 부흥을 이루었는가 하고 의문을 품는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교계에서 아버지가 목회자면 성골, 장로는 진골, 이도저도 아니면 ‘해골’로 불려요. 저는 성(姓)이 소 씨라 ‘사골’이죠.(웃음) ‘시골스러운’ 외모와 솔직함, 내 나름대로 험하게 산 삶의 경험, 목회자의 시대적 사명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 이런 것 아닐까 합니다.”(소 목사)

자연스럽게 최근 대형교회의 문제점과 금권선거 논란에 휩싸였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태도 화제에 올랐다. 그는 15일 나라사랑 구구기도회, 19일 기도한국, 30일 한국교회본질회복대성회를 준비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환골탈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말이 필요 없죠. 한국 교회, 정말 잘 못했습니다. 교회가 부흥 위주로 성장하면서 누구의 바벨탑이 더 높은가 경쟁하고 자리다툼한 결과입니다.”

1995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그는 단편소설 ‘소나기’의 소년을 닮은 심성과 초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고한 신학교 은사가 스물한 살 때 준 선물에 ‘존경하는 소강석 목사님 혜존. 부디 큰 종이 되소서, 작은 종 박종삼 목사’라는 글이 적혀 있어요. 자신을 낮추는 삶을 잊지 않아야 제대로 된 종이 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