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또 종말론… 내일 그들은 뭐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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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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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밀리 라디오 “오늘 오후 대지진” 주장

“한국에도 21일 오후 6시경 지진이 일어날 겁니다.”

‘심판의 날, 2011년 5월 21일’. 임박한 종말을 알리는 패밀리 라디오의 광고 옆으로 한 남성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이 광고는 미국 뉴욕의 지하철에 걸려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심판의 날, 2011년 5월 21일’. 임박한 종말을 알리는 패밀리 라디오의 광고 옆으로 한 남성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이 광고는 미국 뉴욕의 지하철에 걸려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패밀리 라디오(Family Radio)’ 설립자이자 사장 해럴드 캠핑(89) 씨의 ‘예언’이다. 50년 넘게 성경을 연구해왔다는 그는 “2011년 5월 21일 세상의 종말과 휴거(携擧·그리스도의 재림 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하늘로 올라감)가 시작되며, 하나님이 10월 21일까지 다섯 달에 걸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와 관련해 패밀리 라디오는 최근 한국 신문에도 ‘5월 21일 종말론’ 광고를 내기도 했다.

패밀리 라디오는 특정 교파나 교단에 속하지 않은 기독교 라디오 선교회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비영리 단체를 표방한다. 전 세계적으로 40개 이상의 언어로 방송되고 있다. 캠핑 씨는 매일 저녁 ‘오픈 포럼’(Open Forum)이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패밀리 라디오 한국어 방송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성경 속에 ‘심판의 날’을 계산해낼 수 있는 힌트들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캠핑 씨는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대홍수가 일어난 해를 기원전 4990년으로 해석해 2011년이 그때로부터 7000년이 되는 해라고 주장한다.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는 창세기 7장 4절의 내용에 따라 7000년이 지난 올해 큰 환란이 닥친다는 것. 그들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을 근거로 창세기의 7일이 7000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5월 21일이라는 날짜도 대홍수에서 유추해냈다. 이날은 오늘날 성경의 역법으로 두 번째 달 17일이다. 대홍수가 시작됐던 날 또한 기원전 4990년 두 번째 달 17일이었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 살고 있는 이장호 씨(54)는 “패밀리 라디오를 들은 지 20년 정도 됐다. 나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의심도 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직 한국에만 이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패밀리 라디오와 그 지지자들은 이번 ‘심판의 날’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5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워싱턴 기념탑 인근에서는 그의 지지자들이 모여 선전활동을 벌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노란 형광색 티셔츠를 입은 그들은 “하나님이 2011년 5월 21일을 심판의 날로 정하셨다”는 “놀라운 증거”가 있다는 전단지를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그들의 티셔츠에는 ‘매우 강력하며 거대한 지진(Earthquake So Mighty, So Great)’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레저용 차량(RV)에 이동식 주택을 매달고 전국 각지를 돌며 팸플릿을 나눠주고, 옥외 광고판과 버스 정류장 등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선교단을 꾸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까지 가서 직접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내려준 임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씨는 “성경에서 파수꾼이 경고하지 않아 경고를 듣지 못하고 칼에 맞아 죽게 되면, 죽은 사람들의 핏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겠다고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종말을 대비해 비상식량을 챙겨놓거나 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이 씨는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가 간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 보고 계시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고 단지 기도하고 애통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휴거 이후에 남겨질 애완동물을 돌보기 위한 웹사이트까지 생겨났다.

그렇다면 21일 시작될 지진의 강도는 리히터 규모로 얼마나 될까. 캠핑 씨는 “지진계로 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최근의 동일본 대지진은 21일 지진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진은 국제 날짜변경선, 즉 시계가 시작되는 곳인 뉴질랜드에서 5월 21일 오후 6시경에 시작되어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세계 모든 곳에서 5월 21일 오후 6시가 될 때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캠핑 씨의 ‘종말 예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92년에도 1994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5월 21일이라는 날짜가 이번에도 틀린다면, 당신의 말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고 e메일로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제가 드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어쩌면 1994년에 끝날 것이라고 말했을 때는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성경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저는 또 다른 종말의 가능성이 있는 해로 2011년을 지적했었습니다. 5월 21일이 아닐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5월 21일 종말론이 빗나갈 경우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종말론은 정통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다. 신학생들은 조직신학 수업 시간에 신(神)론, 인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과 함께 배운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종말론이 다른 그 어떤 이론보다 먼저 나와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

따라서 종말론도 시대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반복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한부 종말론이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다미선교회에서 주장했던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說). 당시 전국 166개 교회에 흰옷을 입고 모여들었던 신도들은 자정이 넘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딸깍딸깍 넘어가는 시계를 보며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흩어졌다. 집회 주최자들은 뒷문으로 도망쳤다.

한때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통을 호소한다. 주모 씨(35)는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밤잠을 못 이룰 때가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999년 10월부터 2000년 5월까지 H교회를 다녔다. 이 교회는 2000년 “Y2K(밀레니엄 버그. 컴퓨터가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함)로 인한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종말이 분명히 온다. 인류는 2000년을 넘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자들은 당시 전국의 모든 지회에 생수, 건전지, 방한복, 비상약, 건빵, 통조림, 초 등 비상시에 쓸 물건들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 교회는 1988년에도 “지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며 인침(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표시)을 받은 14만4000명 이외에 모조리 멸망한다”고 주장했었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은 “워낙 못 살았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들었지만, 지금의 종말론자들은 자기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선민사상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지금 당장 산으로 달려가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어야 할 ‘그날’ 아침이 밝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캠핑 씨의 ‘예언’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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