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방송 보던 아버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셨죠”

  • 동아일보

개그콘서트 새코너 ‘발레리NO’ 만든 5명

‘발레리NO’ 팀 멤버들은 “쫄쫄이 발레복을 입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아동 프로그램 녹화를 끝낸 아이들을 만났는데 한 어머니가 아이 눈을 조용히 가리고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왼쪽부터 김장군 정태호 이승윤 양선일 박성광.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발레리NO’ 팀 멤버들은 “쫄쫄이 발레복을 입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아동 프로그램 녹화를 끝낸 아이들을 만났는데 한 어머니가 아이 눈을 조용히 가리고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왼쪽부터 김장군 정태호 이승윤 양선일 박성광.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오친 프리야트너(Очень приятно!·‘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뜻의 러시아어)∼”

요즘 KBS 2TV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녹화장을 발칵 뒤집어놓는 코너가 있다. 개그맨 박성광(30), 이승윤(31), 정태호(33), 양선일(32), 김장군(29)이 뭉친 ‘발레리NO’팀.

친한 척하며 기자가 그들이 방송에서 자주 하는 러시아 인사말을 건넸더니, “발음하기 참 어렵죠?”라며 웃는다.

매회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하얀색 ‘쫄쫄이’ 발레복을 입은 다섯 남자는 타이즈 겉으로 도드라진 주요 부위를 가리기 위해 작은 바(Bar)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러시아 발레학교에서 발레를 배우는 설정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바 뒤에서만 숨어 있을 순 없다. 두 손을 들고 턴을 할 때마다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된다. 슬쩍만 쳐도 바퀴 달린 바가 저만치 도망가기도 한다. 인터넷에는 “첫 방송만 보고 웃음이 터져나왔다”라는 시청자 후기가 많다.

“처음 제작진에게 코너 검사를 맡기 위해 의상을 갈아입었는데,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보고 동시에 외쳤어요. ‘야, 우리 이거 하지 말자. 이건 아니다’. 솔직히 부끄러웠죠.” (박성광),

“10∼20년 뒤 일본에 진출한다면 가능한 코너라고 생각했어요.”(양선일, 정태호)

그리고 1월 12일 걱정 반 민망함 반으로 첫 녹화 무대에 섰다. 다섯 남자의 얼굴은 화끈거렸고, 객석 반응은 뜨거웠다.

이승윤은 “저희가 벗을 때, 관객들의 눈빛이 평소와 다른 걸 느꼈다”고 그날의 벅찬 감격을 전했다. “제가 ‘헬스 보이’도 하고 벗는 개그를 참 많이 했는데, 그렇게 초롱초롱 영롱한 눈빛은 처음이었어요.” 정태호는 “양 옆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다 보이는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말했다. 박성광은 “저희 뒤에서 연주하는 ‘이태선 밴드’ 여성 멤버 누나는 유독 밝은 미소로 끝없는 박수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이승윤은 ‘발레리NO’팀의 비밀병기를 공개했다. 실제 격투기 대회에도 출전했던 그는 “민망한 의상 때문에 중요 부위에 보호대가 필요했다”며 “쫄쫄이 의상을 입다가 격투기 선수들이 사용하는 ‘캡’이 생각나 멤버들에게 선물했는데, 확실히 그걸 하니 거기가 덜 ‘도드라져서’ 좋다”고 말했다.

NG가 나면 맥이 끊기는 다른 코너와 달리 ‘발레리NO’팀의 NG는 더 큰 웃음을 유발한다. “빠르게 뛰어가느라 소품을 엉뚱한 곳에 떨어뜨렸어요. 움직일 수 없어 난감해하는 멤버들 때문에 더 웃겼죠.”(김장군)

‘발레리NO’팀의 인기 때문에 같이 하고 싶다는 동료들도 많아졌다. 김준호(36)는 ‘원장스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왔고, 쌍둥이 개그맨 이상호-상민(28)은 ‘쌍둥스키’라는 이름까지 지어와 러브콜을 했다. 이들 다섯 남자가 무대 위에서 발레 하는 시늉만 낸다면 오산이다. 틈나는 대로 실제 발레리노에게 용어와 기본자세 등 레슨을 받고 있다.

“선생님 본인도 시작할 땐 저희와 같았대요. 남자라서 쑥스럽고, 딱 붙는 의상에 당황한 기억이 있다고 해요. 요즘엔 의욕적으로 가르쳐 줘서 평균연령 30대인 저희로서는 따라가기가 어려워요.”(박성광)

타이즈를 신고 민망개그를 펼치는 아들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은 어떨까. 정태호는 “평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잘보고 있다. 힘내라’고 연락하는데, 이 코너 시작하고는 전화가 없다”며 “다들 저희 코너가 대박이라는데 왜 부모님 연락은 끊겼을까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성광은 “첫 방송을 보던 아버지가 조용히 방에 들어가시고 어머님만 TV 앞에서 박수치며 웃으셨다. 후에 아버지가 ‘성광아, 사람들이 그게 재미있나 보더라’라고 말씀하시며 한숨을 내쉬셨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레리NO’팀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선정성과 발레리노 희화화 논란이다. 이승윤은 “개그에는 형사 같지 않은 형사, 기자 같지 않은 기자가 나오지 않나요? 우린 발레리노 같지 않은 발레리노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순수한 모습이나 수치심, 원초적인 감정을 몸 개그 소재로 사용한 것일 뿐 나쁜 의도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트위터에 시청자들이 ‘갱년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발레리NO’를 보고 웃음으로 털어냈다’거나 ‘우리 아들도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글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동아닷컴 이유나 기자 lyn@donga.com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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