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네 가지 맛 막대사탕같은 연극 ‘썸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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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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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만나고 싶었어.”
네 명의 여자를 한 명씩 차례로 만나면서 출세한 젊고 잘 생긴 영화감독은 말했다. 그가 한때 사랑했던 여인들. 그는 결혼을 앞두고 프랑스에서 돌아와 옛 연인들을 한 명씩 호텔 방으로 초대해 ‘관계 바로잡기’에 나선다.

연극 ‘썸걸즈(Some Girls)’를 한 마디로 단정한다면 ‘맛있는’ 작품이다. 마치 네 개의 과일 맛이 나는 막대사탕을 번갈아 가며 입에 넣는 기분이 든다. 네 개의 에피소드는 제각기 다른 맛을 내지만, 네 개의 교향곡 악장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잘 차려진 코스요리 성찬같은 일관성을 드러낸다. 2007년 초연 때의 오리지널 캐스팅도 반갑다.

극의 제목은 ‘썸걸즈’지만, 사실 스토리의 중심에는 영화감독 강진우가 놓여있다. 이날 무대에는 배우 이석준이 강진우로 등장했다. 연극보다 뮤지컬배우로 더 친숙한 이름이지만 그는 1996년 연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데뷔한, 연극에 뿌리를 둔 배우이다.

이석준은 1시간 40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무대를 사수했다. 이석준의 팬이라면, 적어도 이석준의 무대 노출시간만 놓고 볼 때 애호를 넘어 ‘숭배작 리스트’에 넣어둘 만했다. 짧지 않은 공연 시간 동안 이석준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밑천을 모두 까 보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여자(전형적인 ‘엔조이 연인’이었다)와의 만남 장면에서 보여준 이석준의 술 취한 연기는 지금 떠올려도 쿡쿡 웃음이 난다.

네 명 여인의 연기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았지만, 역시 두 번째 여자 ‘민하’ 역을 맡은 정수영을 지나칠 수 없다. ‘정조 관념 따위는 개에게나 줘버려’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듯한 이 여인은 의외로 복잡한 감성을 속내 깊숙이 감추고 있다. 강진우가 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자는 동안 그녀가 관객을 향해 들려주는 독백은 제법 깔깔해 마음 표피에 생채기를 낸다.

꽤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또 한 명의 ‘두 번째 여자’ 캐스팅 배우인 유하나의 연기도 사뭇 궁금하다.

이 작품에는 모두 다섯 개의 반전이 등장한다. 네 여인과의 에피소드는 모두 각기 하나씩의 반전을 갖고 있다. 최종적으로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어찌 보면 썩 불쾌할 수도 있는 반전이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남자가 오열하며 사실상 ‘썸걸즈’의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게 된다.

개인적으로 남자의 오열장면(이석준이 상당히 호연을 보여주었다)을 또 하나의 감추어진 반전이라고 읽고 싶었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에는 총 여섯 개의 반전이 있는 셈이다.

극단 맨씨어터 우현주 대표는 “아마도 오리지널 캐스트로 올라가는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조금 더 소중해진다. ‘마지막’이란 말은 확실히 울림이 다르다.
우현주 대표는 이날 공연에서 네 번째 여자로 등장해 지적이면서도 시원시원한 성격(물론 반전이 숨어있다)의 ‘은후’ 역을 연기했다. 그 역시 ‘썸걸즈’의 초연 배우이기도 하다.

‘네 가지 맛’ 연극 ‘썸걸즈’는 2011년 1월 2일까지 서울 동숭동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공연한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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