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해맑은 햇살 닮았나… 천혜의 풍광보다 아름다운 보르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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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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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와 용서의 와인

프랑스 FAYAT 그룹이 소유한 샤토 클레멍 피숑.
프랑스 FAYAT 그룹이 소유한 샤토 클레멍 피숑.
생테스테프에 있는 그랑 크뤼 클라세 4등급 ‘샤토 라퐁 로셰’는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다. 웅장한 샤토(대저택) 건물도, 포도밭에 세워진 표지판 말뚝도 온통 노란색이었으니.

“16세기부터 와인을 만들던 이곳을 코냐크 출신 할아버지(귀 테스롱 씨)가 1960년에 사들였어요. 할아버지는 1974년엔 샤토 퐁테카네(포이야크, 그랑크뤼 5등급)도 구입했죠. 샤토 라퐁 로셰의 기존 회색 칠을 아버지(미셸 테스롱 씨)는 늘 못마땅해했어요. 1999년 어느 날 아버지는 건물을 3분할해 빨간색, 녹색, 노란색으로 칠해 보더니, 노란색으로 최종 결정했어요. 2000년엔 와인 레이블도 노란색으로 바꿨죠.”

안내를 맡은 바질 테스롱 씨(31)는 오너 3세로 2007년 가업인 와이너리 경영에 뛰어들었다. 아내(‘샤토 라리보’ 소유주)와의 사이에 두 살과 한 살배기 아들을 둔 그는 으리으리한 성주의 아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의바르고 유머러스했다. “기자분은 두 살짜리 딸이 있다고요? 그럼 저희 아들과 서둘러 만남의 자리를 주선해야겠는걸요. 하하.”

그는 스위스 럭셔리 회사인 리치몬드 그룹(카르티에, 몽블랑 등 소유)에서 일한 적이 있다. “샤토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배웠던 마케팅은 다 잊기로 했어요. 네고시앙(와인 중개상)을 통해 와인을 팔기 때문에 치열한 광고를 할 필요가 없죠. 그 대신 고객과 직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정성을 쏟게 됐습니다.” 럭셔리 업계에서 배운 교훈이 있냐고 물었더니 말했다. “매사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요.”

프랑스 생테스테프에 있는 샤토 라퐁 로셰의 정원에서 점심 만찬이 차려졌다. 회색 카디건을 등에 걸치고 서 있는 남자가 미셸 테스롱 씨, 빨간색 스웨터의 금발 남자가 바질 테스롱 씨.
프랑스 생테스테프에 있는 샤토 라퐁 로셰의 정원에서 점심 만찬이 차려졌다. 회색 카디건을 등에 걸치고 서 있는 남자가 미셸 테스롱 씨, 빨간색 스웨터의 금발 남자가 바질 테스롱 씨.
그는 올해 여름에는 샤토의 와인 숙성고를 클래식 공연장으로 개방했다. 아버지의 연륜과 자신의 젊은 감각, 양조 기술 감독의 테크닉을 잘 블렌딩하는 게 자신의 책임인 것 같다고.

드넓은 정원에 점심 식탁이 차려졌다. 이 샤토 지분 25%를 지닌 바질 씨의 고모 캐롤린 포니아투브스키 씨도 우아한 차림으로 참석했다. 최근 폴란드 귀족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낸 그가 바질 씨를 향해 말했다. “내 사랑스러운 조카야. 눈부신 햇살 때문에 갈증이 난 고모를 위해 저 투명한 유리잔을 건네주겠니?” 귀족 여성이 구사하는 어휘는 한 편의 시 같았다.

최근 재혼한 바질 씨의 생모도 초대돼 왔다. 하필 전 남편의 절친한 친구랑 재혼했다. 바질 씨는 말했다. “에고, 내가 창피하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었기에망정이지.” 모두가 껄껄 웃으며 허물을 덮던 그 자리에는 1996년과 2005년 샤토 라퐁 로셰가 있었다. 참고로 생테스테프의 테루아는 메도크에서도 가장 다채롭다고 평가된다. 프랑스의 다양한 가족상처럼….

○ 보르도 사람들로부터 배운 인생의 교훈

메도크에서 만난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우선 생테스테프의 네고시앙인 ‘두르트’의 홍보 담당 마리 엘렌 씨, 고맙습니다. 평소 궁금했던 질문에 충실하게 답해주셔서. 독자들을 위해 당신과의 대화를 옮깁니다.

―와인도 사람처럼 될성부른 ‘재목’은 떡잎부터 알아봅니까.

“와인의 잠재력은 어려서부터 보입니다. 어려서 없던 가능성이 훗날 생기지는 않습니다. 지중해 클럽메드 리조트를 연상시키듯 찬란한 햇빛을 받은 2005년 빈티지 와인은 오크통에 담길 때부터 이미 좋은 와인이 되리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2009년 빈티지도 오래 나이들 수 있다는 좋은 예감이 듭니다.”

―그 좋은 예감의 근거는 뭡니까.

“포도가 가뭄에 고생하지 않았거든요. 산도와 당도가 균형을 이루리라 봅니다.”

―포도를 너무 오냐오냐 키워도 안 된다던데요.

“어린아이가 심하게 앓으면 아름다울 수 없죠. 적당한 스트레스와 고생은 다릅니다.”

물리스 ‘샤토 레스타즈 다르키에’의 프랑수아 베르나르 씨가 배럴 테이스팅용 와인을 뽑아내고 있다.
물리스 ‘샤토 레스타즈 다르키에’의 프랑수아 베르나르 씨가 배럴 테이스팅용 와인을 뽑아내고 있다.
다음으로는 메도크 ‘샤토 파타슈 도’의 장미셸 라팔루 대표 내외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해 주신 레드와인 소스의 멧돼지 요리와 염소 치즈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치즈를 매일 즐기면 살찔까 염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모님은 말씀하셨죠. “꽤 괜찮은 카망베르 치즈 한 조각을 먹는 게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 식단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균형’이니까요.” 카를라 브루니 프랑스 대통령 부인에 대한 사견도 신선했습니다. “아무리 예뻐도 사생활을 떠벌리는 건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에요. 그나마 브루니가 엘리제궁에서 나대지 않아 국민이 천만다행이라 여긴답니다.”

물리스 ‘샤토 레스타즈 다르키에’의 브리지트 베르나르 씨는 “어린 데도 성숙한 와인, 나이가 들어도 젊을 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 와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포도 수확으로 손이 까매진 리스트라크 ‘샤토 르베르디’의 30대 여성 소유주 오르데 토마 씨도 그리워집니다. 포도 품종별 블렌딩 체험을 관광 상품화하겠다는 그의 각오가 다부져 보였습니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했습니다. ‘와인은 세상에서 가장 문명화된 산물’이라고. 훗날 딸이 크면 가을의 보르도에 데려가려 합니다. 네가 배워야 할 모든 게 포도밭에 있다고.

■ 美 내파밸리 포도 수확 체험


리스트라크 ‘샤토 르베르디’의 일손들이 수확된 포도를 선별하고 있다.
리스트라크 ‘샤토 르베르디’의 일손들이 수확된 포도를 선별하고 있다.
10월 중순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는 짙은 포도 향기로 가득하다. 본격적인 포도 수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어느 와이너리를 가나 포도를 담은 상자가 수북했고 이를 처리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와인이라는 단어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와이너리에서 벌어지는 일은 노동집약적인 수작업이 많았다.

동아원이 내파밸리에 소유한 와이너리인 ‘다나 에스테이트’의 포도밭 및 카브(와인을 숙성 저장하는 셀러나 와인 양조시설)에서 포도 따기 및 솎아내기, 포도 검수, 배럴 굴리기 등을 직접 체험했다. ‘콜긴’ ‘아로호’ ‘할란’ 등 내파밸리 컬트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에서도 수확 및 발효 과정을 살펴봤다.

○ 천지인(天地人)이 만나는 이곳

수확철 내파밸리의 하루는 어두운 새벽부터 시작된다. 해가 뜨기 전에 포도를 따야 포도가 햇빛에 마르지 않고 본래의 맛과 풍미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파밸리는 요즘 오전 7시 반 정도에 해가 뜬다. 11일 새벽달을 보며 오전 6시 반경 ‘비니어드 29’에 도착했다.

잘 익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포도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 제조용 포도는 우리 식탁에 흔히 오르는 캠벨, 머루 같은 품종의 포도보다 알이 작다. 큰 블루베리 정도의 크기지만 당도는 20∼25브릭스로 캠벨의 10∼15브릭스보다 훨씬 높다. 다나 에스테이트의 와인 메이커 캐머런 보터 씨는 “포도 수확의 최적기를 판단하기 위해 연구소에서 포도의 당도 등을 측정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직접 맛을 보고 결정한다”면서 “포도 씨가 브라운색을 띨 때가 바로 그때”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보르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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