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먼동아 스타 에세이] 윤손하가 제안하는 일본 도쿄 산책 코스 ① ‘도쿄의 작은 유럽, 내가 살고 있는 에비스’
입력 2010-10-04 16:342010년 10월 4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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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련된 쇼핑몰로 유명한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의 주변으로는 쾌적하고 조용한 주택가가 이어지는데, 이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에비스의 대부분이 언덕지대인 반면, 이 일대는 평탄한 평지로 되어 있어 다른 구민들도 부러워하는 지역이라고. 더욱이 이곳은 워낙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때문에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혹여 동네 남학생의 눈에 띌까봐, 연기자가 된 후론 개인적인 사생활이 노출될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동네를 나설 때에도 신경이 쓰였던 게 사실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모두 잊어버려도 좋을 괜한 걱정거리가 된다.
우리동네 산책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면서, 동네 주민들과 ‘오하요 고자이마스!’라며 상쾌한 인사를 나눠 본다.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조깅할 때, 자전거를 탈 때에도 모두들 나를 ‘이웃의 소나’로 반겨준다.
쉬는 날이면 끝모를 청명한 하늘과 매일매일 새하얀 천으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아 놓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깨끗한 길, 숲속에 온 듯한 우거긴 녹음의 푸른 잎을 친구 삼아 산책을 즐기는 거다.
이렇게 호젓하게 걷는 것을 일본어로는 ‘유루유루’, ‘부라부라’라고 표현하는데 이 단어를 처음 배울 당시, 부드러운 어감에 반해 산책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온 것 같다.
가끔 머릿속을 깨끗하게 리셋하고 싶은 우울한 날이 찾아올 때면 산책 코스를 변경하곤 한다. 근처 에비스 공원을 시작으로 단골채소가게인 ‘오자키 청과’를 지나 삼거리 대로변의 작은 빵집 ‘피카솔’까지 천천히 걷다가, 가장 좋아하는 담백한 소프트 쿠키를 입에 물고 돌아오는 일상.
비록 맥주 한 잔에도 힘이 풀려 주저앉는 몹쓸 주량 때문에, 가까운 맥주 박물관의 무료 시음조차 마음껏 즐기기는 어렵지만 언제나 말없이 나를 반겨주는 산책로를 가진 우리 동네 생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때론 차도 사람도 없는 조용한 집 앞 횡단보도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무단횡단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유난히 교통규범에 민감한 도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행여 사소한 내 실수 하나가 일본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 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일본은 맨션의 자전거 주차장 수준이 집값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 집 앞의 주차장은 2층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자전거끼리 부딪치거나 헛갈릴 걱정이 없어 좋다.
일본에서 갓 활동을 시작하게 됐을 때, 나는 정말 일에 대한 욕심이 엄청나서 여유라는 것을 잘 몰랐다. 일본어라고는 달랑 아침, 점심, 저녁 인사 세 마디밖에 하지 못했던 나였는데, 그렇다고 그냥 한국에서 온 예쁜 연예인인 척하며 인형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기는 싫었다. 그래서 누가 내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일도 일본어 공부도 참으로 치열하게 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내게 든든한 지원군이 둘 생기면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일본에 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이렇게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언제나 나에게 사랑의 힘을 주는 남편과 시우가 있어서이다. 정리·박미현<더우먼동아 http://thewoman.donga.com 에디터 aammy1@naver.com> 고태경<더우먼동아 http://thewoman.donga.com 인턴 에디터 lfscm5@nate.com> 글·윤손하 도움주신 곳·윤손하의 소소한 도쿄(페이퍼북 02-546-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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