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992>卒然問曰天下惡乎定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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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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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성진 9단 ● 주형욱 5단
본선 16강 3국 5보(89∼110) 덤 6집 반 각 3시간

맹자는 양양왕, 즉 위나라 양왕을 만나보고 나와서는 다른 사람에게 양양왕이 도무지 군주답지 않아 경외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고는 양양왕과 담론한 내용을 밝혔다. 양양왕은 멀리서 보아도 군주답지 않고 가까이서 보아도 전혀 위엄이 없었는데 자신을 접견하고는 불쑥 “천하가 어디에 정해지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맹자는 말했다. 양양왕의 질문 방식은 원로나 현자를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없을 만큼 당돌했다.

卒然의 卒은 猝과 같다. 卒이 오래된 글자, 猝이 새로운 글자로 이 두 글자와 같은 관계를 古今字(고금자) 관계라고 한다. 한문에서는 古字와 今字가 뒤섞여 나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然은 동사 뒤에 붙어 그 동사를 의태어로 만든다. 忽然(홀연) (위,괴)然(위연) 茫然(망연) 등의 然이 모두 그러하다. 惡(오)는 의문사로, 개사 乎의 목적어다. 영어에서 전치사의 목적어가 의문사일 때 목적어가 도치되듯이 한문에서도 개사의 목적어인 의문사는 개사 앞으로 나온다. 定于一의 一은 한 군주나 한 나라를 가리키되 궁극적으로는 仁政(인정)을 실행하는 군주나 그 나라를 뜻한다. 于는 乎와 마찬가지로 ‘…에’의 뜻을 나타낸다.

주자는 容貌(용모)와 辭氣(사기)야말로 德(덕)의 상징이라고 했다. 양양왕은 그 태도에서 군주로서의 위엄이 드러나지 않는 데다가 현자와의 대화에서도 덕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그런 인물이 高遠(고원)한 정치이념을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맹자는 상대의 속내를 읽고 자신의 이념을 간단명료하게 진술했다. ‘천하가 어디에 정해지겠습니까?’라는 질문에 ‘定于一’이라고 대답한 것은 정말로 단호하여 박력이 있다. 정치 자문에 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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