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자연의 죽비소리, 나를 깨우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21 03:00수정 2010-09-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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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화가 김명숙-임동식 씨 개인전
화가 임동식 씨의 ‘자연예술가와 화가’전에 선보인 ‘친구가 권유한 검바위 고목’. 행동하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자연 예술을 꿈꾸던 작가는 자연과 진정한 교감을 나누는 친구를 만나면서 회화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번 전시는 임 씨가 친구인 자연예술가를 통해 자연과 새롭게 소통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 제공 스페이스 공명
화가는 붓과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먹을 묻힌 수세미로 덧칠하거나 숯으로 그은 무수한 선으로 누런 종이를 채울 뿐이다. 손의 감각, 노동의 흔적을 오롯이 담은 검은색의 단색조 회화. 고독하고 치열한 내면의 일기장처럼 울림이 깊다.

10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화가 김명숙 씨(55)의 ‘The Works for Workers’전에서 만난 작품이다. 올빼미와 원숭이 등 동물의 초상과 인간을 탐구한 30여 점을 선보인 자리다. 시골 작업실에 틀어박혀 시류와 상관없이 고집스럽게 회화의 진정성을 탐구해온 화가. 침묵에 가까울 만큼 말수 적은 그림인데 그 안에서 뿜어내는 정신적 에너지는 강렬하고 독보적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체험할 기회다. 02-736-4371

임동식 씨(65)의 ‘자연예술가와 화가’전도 회화를 통해 정직하고 혹독한 자기수행의 궤적을 드러낸다. 독일 유학을 마친 뒤 충남 공주의 원골마을에 터 잡고 야외설치미술 운동을 펼쳐온 그가 자연과 인생여정을 기록한 20여 점의 회화를 선보였다. 10여 년 전 그는 자신처럼 머리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과 참되게 교감하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면서 작업의 변화를 맞는다. 양복점 점원에서 택시운전사까지 헤아리기 힘든 삶의 여정을 걸어온 벗을 ‘자연예술가’로 명명한 뒤 친구가 권유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를 선보인 자리다. 11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 1층 스페이스 공명. 02-730-5850

○ 그림 농사에의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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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곧추세운 소를 단색조로 표현한 김명숙 씨의 ‘미노타우로스’ 연작은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사진 제공 사비나미술관
20년 가까이 소들이 살던 외양간을 작업실로 써온 김명숙 씨는 3년 전 윗마을로 이사했다. 나이 든 농부만 남은 집과 허물어가는 빈집이 공존하는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산막리. 화가는 들창 너머로 ‘농부도사’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지런히 ‘그림농사’를 지었다. 이번에 그 결실을 드로잉적 요소와 회화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선보였다.

짙은 어둠이 담긴 작품에선 무엇을 그렸는지 쉽게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잠시 정신을 집중하니 이미지가 말을 건넨다. 원숭이와 개 등 동물의 본능적 행태에 인간의 모습을 빗댄 회화다. 늘 소의 체취를 느끼며 작업한다는 작가가 소를 주제로 완성한 미노타우로스 연작이 인상적이다. 웅크리고 있거나 다리를 높이 치켜든 소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작가는 “인간의 상흔에 대한 공부”라고 표현한다.

화가 밀레의 정신을 파고든 연작, 심장을 그린 연작 역시 인간의 삶과 존재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다른 작품과 달리 심장 그림은 붉은색이다. 장뇌에서 추출된 천연색과 작가의 머리카락을 사용해 완성된 작품으로 현실적이면서 초현실적 세계를 넘나든다.

○ 자연 예술가와의 동행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갓진 곳에 자리한 스페이스 공명. 중진작가를 위한 비영리 전시공간인 이곳은 첫 번째 전시후원 작가로 임 씨를 선정해 전시를 꾸몄다.

‘친구가 권유한 방흥리 할아버지 고목나무’ ‘친구가 권유한 검바위 고목’의 경우 여러 장의 캔버스로 구성된 작품. 자연에 있어선 만물박사인 친구의 판단을 믿고 그와 동행해 찾아간 현장. 화가는 벗과 더불어 여러 번 오래된 나무를 찾아가고 나무의 사계를 현장에서 완성한다. 닮은 듯, 조금씩 다른 웅장한 나무들. 생명은 살아 있으면서 늘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농부처럼 땀 흘려 그림을 그려온 두 중견화가. 그들의 삶이 무딘 마음을 성성한 정신으로 깨어나게 만드는 죽비소리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휘황한 미술이벤트가 홍수를 이루는 와중에도 진한 고뇌와 노동의 흔적을 담은 전시가 빛을 잃지 않는 이유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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