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프랑스 패션은 요리가 일으켰다” 음식-사랑-문자로 본 東西문명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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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잭 구디 지음·김지혜 옮김/440쪽·2만3000원/산책자
‘근대화’ ‘자본주의’ 등의 개념을 내세워 현대세계를 이끌고 있는 유럽의 지식체계와 경제 시스템은 영속적인 체제인가. 동양은 진보에 실패한 원시적 사회인가. 이와 같은 그간의 이분법적 사고에 영국 역사인류학자인 저자는 “동양과 서양 사이의 유사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간 서양의 사상과 학문의 많은 분야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왔다고 지적하며 유사성을 외면한 채 차이만 부풀린다면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에 대한 이해도 왜곡된다고 염려한다.

흔히 예를 드는 ‘대가족이 함께 살며 농사에 치중하다 근대화에서 멀어진 동양’과 ‘산업혁명 이후 핵가족화가 진행된 서양’의 대비는 부풀려진 차이를 나타내는 사례다. 독일 사회학자 베버 같은 학자들은 가족 공동체는 연고를 중시하는 비효율적인 것이기에 배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저자는 이 같은 주장에 영국의 막스앤드스펜서, 미국의 포드처럼 가족이 참여해 발전한 기업의 예시를 들어 서양에서도 대가족 개념의 집단이 존재하고 발전을 저해하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의 ‘로맨틱한 사랑은 근대적인 것이고, 근대성은 유럽적인 것이므로, 사랑은 유럽의 것’이라는 논의는 자민족 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연시(戀詩)가 널리 쓰였고 아프리카 가나 지역에도 사랑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 ‘노네(none)’가 있음을 설명하며 사랑이 유럽의 전유물이 아님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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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유사성을 되짚은 저자는 ‘서양만의 특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음식, 사랑, 문자 같은 키워드로 동서양 문명의 발달 과정을 풀어낸다.

음식은 생존의 필수 요소였지만 사회가 발달하고 계급이 나뉘면서 상류층의 상징이 됐다. 귀족들은 차별화된 음식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드러냈고 사치금지법을 제정해 민간인의 영역 침범을 막았다. 17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요리가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문화도 함께 영향을 끼쳐 파리가 패션과 에티켓의 발원지가 되는 데 이르렀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요리의 발달이 요리를 관장하고 사교생활 전반을 주관한 여성들의 문화적·사회적 신장을 이끌었다고 봤다. 그 결과 프랑스는 17세기에 많은 여성 소설가가 등장했고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이혼법을 도입했으며 양성평등 교육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게 됐다.

저자는 문자를 통해 세계화의 흐름을 짚었다. 상인들은 거래 기록을 문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교역 규모와 범위를 키웠다. 유럽 이전에는 중국이 상업 세계를 주도했다. 인도산 면제품을 나타내는 ‘엥디엔’과 중국 도자기인 ‘차이나’가 인기를 끌면서 유럽은 공장 생산에 눈뜨게 됐고, 동시에 상업 문화로 발달한 중국의 외식과 포장 문화가 중국 음식과 함께 세계로 퍼지게 됐다. 중국이 촉발한 상업이 유럽의 발달을 이끌어내고 세계화가 이뤄진 과정의 단면을 본 셈이다. 아프리카 음식의 경우 세계에 퍼지지 못한 이유로는 계급 분화가 없어 고급 요리가 등장하지 못했고 지속적인 문자 전통이 없어 알리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문명이란 서로 뒤섞이고 이끌며 함께 가는 현상이다. 앞서거나 뒤처질 수는 있지만 어느 것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시각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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