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음식과 만화의 만남… 사각 틀 안엔 삶의 온기가

동아일보 입력 2010-09-03 03:00수정 2010-09-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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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 단맛 매운맛 감칠맛… 인생의 희노애락 버무려
일본산 압도적인 가운데… 한국산 2002년 식객 대표적
요리문화 관심 크게 높여… 동호회 블로거 활동 활발
평범한 음식 속에 숨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주희 작가의 만화 ‘키친’의 한 장면. 오이소박이에 엄마의 수십년 세월이 담겨 있고, 바지락칼국수에선 바닷가에서의 한 나절이
피어오른다. 음식이란 그런 거다. 사진 제공 서울문화사
《바짝 말라버린 마음에 일어난 셀 수 없는 균열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약’이 될 때가 있다. 음식에는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담겨 있다. 아련한 추억과 온화한 위로, 다정한 손길…. 음식과 요리를 다룬 만화의 미덕도 여기에 있다. 다른 생명을 취하지 않고는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작은 사각형 속에 깃들어 있다. 음식과 요리를 주제로 한 만화는 ‘일본산’이 압도적이다. 초밥(미스터 초밥왕), 와인(신의 물방울), 빵(따끈따끈 베이커리), 라면(라면요리왕), 카레(화려한 식탁), 생선요리(어시장 삼대째) 등 스펙트럼이 넓고 묘사가 세밀하다. 일본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1970년대부터 요리문화가 발달했고,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리를 소재로 한 만화도 함께 늘어났다.》

한국에서는 2002년 첫 선을 보인 ‘식객’이 대표적이다. 식객이 붐을 일으키면서 만화에 등장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식도락 동호회, 만화 속 조리법을 따라해 보는 요리 블로거가 등장했다. 바나나우유, 단팥빵, 굴 등을 각각 에피소드로 그린 조주희 작가의 ‘키친’, 중화요리를 다룬 조경규 작가의 ‘차이니즈 봉봉 클럽’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먹을거리의 소중함,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요리하는 이의 정성, 함께 나눠 먹는 즐거움. 음식만화를 관류하는 공통점이다. 그래서 음식만화에는 온기가 있다. 선선한 바람을 기다리는 요즘, 책갈피마다 향기가 피어오르는 맛있는 음식만화를 소개한다.

○ 삶에 지쳤을 때-심야식당,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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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 문을 여는 기묘한 식당. 메뉴라고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술이 전부인 초라한 밥집이다. 이 ‘심야식당’에 찾아오는 손님은 ‘안 팔리는’ 가수, 만년 패배만 하는 복서, 수상한 깡패, 요요현상에 시달리는 뚱보, 늘 연애에 실패하는 스트리퍼 같은 우리 주변의 ‘루저’들이다. 식당 주인인 ‘마스터’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뿐이지만,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이들은 심야식당에서 저마다 작지만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간다.

‘심야식당’은 지난해 일본 TBS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음식감독을 맡은 이이지마 나미 씨가 이 드라마에도 참여했다. 이 만화를 번역, 출간하는 대원씨아이의 곽혜은 기자는 “만화책을 안 보던 분들이 많이 찾는 만화”라면서 “심야식당의 독특한 감성이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키친’은 지난해 1권이 나온 이래 최근 3권까지 출간됐다. 작가는 음식만큼이나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삶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된장찌개에서는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의 애잔한 마음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찾아든 장례식장에선 육개장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이 만화는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사이트(www.homeplusstory.com)에서 연재되고 있다. 출판사 측은 “독자 소감 가운데 ‘음식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이 가장 많다”면서 “특히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 진심어린 마음이 그리울 때-맛의 달인, 어시장 삼대째


1983년부터 일본의 주간 만화잡지에 연재되고 있는 ‘맛의 달인’은 20년이 넘는 기간동안의 일본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거품 경제 시기에 맛보다는 값비싼 외국 요리를 추앙하는 졸렬한 미식 붐을 꼬집고 1990년대에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배경으로 한 쌀과 쇠고기 수입, 고래잡이, 채소에서 검출되는 농약 문제들이 등장한다. 최근 104권이 나왔다.

주인공은 동서신문사 문화부 기자인 지로와 유우코. 창사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완벽한 메뉴’를 담당하게 된다. 라이벌인 제도신문사가 지로와 절연한 아버지이자 미식클럽 주인인 우미하라의 도움을 얻어 ‘최고의 메뉴’를 내놓으면서 두 신문사가 완벽 대 최고의 대결을 정기적으로 벌인다.

이 만화는 식(食)의 근본, 인간과 음식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지로는 도박에 빠진 요리사와 볶음밥 만들기 대결을 펼친다. 사치스러운 재료를 듬뿍 사용한 요리사보다 지로의 평범한 볶음밥이 맛있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손님들. 지로는 요리사에게 말한다. “이것저것 사치스러운 재료를 써서 사치스러운 맛을 보는 건 다른 요리로 충분해. 볶음밥의 맛이란 쌀밥의 맛이야. 밥맛을 맛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지. 목적에 어긋나는 것을 만든 것 자체가, 당신의 감이 어긋나 있다는 증거야.”


‘어시장 삼대째’는 은행원 출신인 아카키 쥰타로가 장인의 활어 도매 가게를 물려받은 뒤 고군분투 적응기를 그린 만화다. 책상물림이라 구박 받고 무시당하면서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생선에 대해 하나씩 배워간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쥰타로는 ‘인정(人情)’ 그 자체다. 각 권의 끝에는 ‘초간단 어시장 요리’ 코너가 있어 직접 응용해볼 만하다.

○ 요리하고 싶어질 때-어제 뭐 먹었어?

‘집밥’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제 뭐 먹었어?’가 좋겠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의 최신작이다. 주인공은 슈퍼마켓의 세일 상품만 노리고 동네 아주머니와 수박 한 통을 반씩 나눠서 사는 40대 짠돌이 게이 변호사 카케이 시로다. 같이 사는 미용사 파트너를 위해 알뜰살뜰 구입한 식 재료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용해 따끈한 밥상을 뚝딱 차려낸다. 슈퍼마켓을 돌며 직접 재료를 고르고 다듬어 누군가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일이 얼마나 포근한 일인지 살짝 맛보게 해준다.


‘큼지막하게 썬 경수채(교나) 위에 찬 두부를 올린 뒤 그 위에 채친 차조기잎과 오이, 삶은 새우를 얹고 참기름, 폰즈간장소스로 만든 드레싱을 끼얹은 두부 샐러드.’ ‘닭 육수에 다진 파, 다진 마늘, 설탕, 식초, 참기름, 소금, 후추를 넣어 드레싱을 만든 뒤 토마토 위에 뿌려주면 한국식 샐러드 완성.’

일본 가정식 위주라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채소가 나오지만, 우리네 재료로 대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간단한 레시피들이다. 또 초밥 한 입 먹고 ‘파도가 입 안으로 몰려온다’는 둥 온갖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하는 호들갑이 없다. 카케이 변호사의 한 마디. “요리할 땐 잡생각이 안 들잖아요? 그래서 난 심난한 일이 있어도 밥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져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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