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지휘봉이 허공을 가르니 ‘꿈의 앙상블’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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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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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지휘 ‘앱솔루트 클래식’ 연주회
합주력 ★★★☆ 지휘 ★★★★☆

20일 열린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콘서트에서 장한나 씨가 슈베르트 교향곡 8번‘미완성’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성남아트센터
20일 열린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콘서트에서 장한나 씨가 슈베르트 교향곡 8번‘미완성’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성남아트센터
“한나 누나는 악보만 정확히 보려고 하기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라고 말해요. 저는 커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어요.”

대안학교에 다니며 첼로를 켜는 게 취미인 정우찬 군(11·경기 파주시)은 요즘 ‘한나 누나’에게 푹 빠져 있다. 첼리스트 장한나 씨의 ‘앱솔루트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최연소 단원으로 참여해 꿈에서나 가능했던 지도를 받게 된 것이다. 충북 청주시 진흥초교에서 온, 호른을 부는 임정현 양(12)은 장 씨의 지휘 스승인 ‘로린 마젤 할아버지’의 온몸으로 지휘하는 뜨거운 음악 사랑에 반했다. 20일 밤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앱솔루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첫 연주회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만난 100여 명의 청소년은 한결같이 ‘지휘자’ ‘선생님’보다는 ‘누나’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연방 함께 사진 찍기에 바빴다.

공연에 앞서 장 씨는 마이크부터 잡았다. 간곡한 표정으로 그는 “이러한 좋은 프로그램이 오래도록 가게 해달라”고 청했다. 로린 마젤 씨가 먼저 등장했다. 이것이 과연 10대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인가. 베버의 ‘오베론 서곡’ 도입부부터 유연한 현악기의 울림이 극히 세밀했다. 뉴욕 필을 이끌고 내한했을 때 보여주었던 밋밋함은 오히려 사라지고, 한국 젊은이들 앞에서 거장의 지휘봉은 커다란 궤적을 그으며 허공을 갈랐다.

‘지휘자 장한나’는 어땠을까. 이날 연주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단 4회의 리허설 끝에 얻어낸 결과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장 씨는 첼로를 연주할 때와 동일하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단원들과 한 호흡을 이뤘다. 약음에서 강주로 치솟아가는 도약에서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가속도를 거세게 붙였다. 그의 슈베르트는 처절함에 가까웠다. 브람스 교향곡 4번에서 그는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 함을 꿰뚫고 있었다. 간혹 흐트러지는 개개 연주자들의 실수도 각 악장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음악의 진행 속에 묻혀 버렸다. 브람스 특유의 ‘안으로 파고드는’ 슬픔은 젊은이들의 혈기 앞에서 밖으로, 밖으로 뿜어졌다. 5회의 커튼콜 끝에 3악장을 앙코르로 들려주고서야 장 씨는 땀을 닦을 수 있었다.

최근 영화로도 개봉된, 비행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주고 음악을 가르쳐 새 삶으로 인도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 프로젝트는 이제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기적과도 같은 2월 카네기홀 데뷔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은 한층 더 발전한 청소년 음악교육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음악 신동으로 출발해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지휘봉까지 잡은 20대 후반의 장 씨는 진정한 나눔의 미덕을 감동으로 안겨주고 있다. 28일 공연 표가 매진되면서 27일 1차례 추가 공연이 더 잡힌 것은 당연한 결과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

:i: 3만∼5만 원(어린이 청소년 1만∼2만 원). 27, 28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시 야탑동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031-783-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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