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녀를 사랑해야 할지 죽여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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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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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링 짐/크리스티안 뫼르크 지음·유창란 옮김/432쪽·1만3000원/은행나무

사랑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 매혹적인 사내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1950년대식 빨간색 오토바이에서 내려선 길 건너편 여자에게 상냥하게 윙크를 날리는 근육질의 남자. 그러나 그는 ‘나쁜 남자’다.

‘달링 짐’은 세 여자가 희생된 살인사건과 소설의 배경이 된 아일랜드의 신화, 사건의 진실을 좇는 우체국 직원의 발걸음을 꼼꼼하게 교직한 소설이다. 작품을 지배하는 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여름 더위를 내모는 데 제격이다.

아일랜드 더블린 변두리의 작은 바닷가 마을. 중년의 여성 모이라와 조카 피오나, 로이진이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 수사 결과 모이라가 피오나와 로이진에게 쥐약을 먹여 서서히 죽게 만들었고, 죽어가는 피오나와 로이진이 모이라를 삽으로 공격해 죽인 것이 밝혀졌다. ‘왜?’라는 의문을 덮어둔 채 수사는 종결되지만, 우체국 직원 니알이 우연히 피오나의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사건의 이면이 드러난다.

참혹한 살인의 원인이 된 ‘옴 파탈’이 있었다. 마을로 흘러들어온 떠돌이 사내 짐 퀵은 밤마다 술집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아일랜드 신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입담을 자랑한다. 마을의 여성들이 순식간에 홀리고, 피오나 역시 연인을 차버리고 짐의 품에 뛰어들 만큼 남자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피오나와 동생 로이진은 곧 짐의 뒤에 숨겨진 비정한 면모를 알아차리고, 주변 마을에서 잇달아 일어난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이 짐이 아닐까 의심한다. 영악한 짐은 모이라 이모를 유혹해 결혼 약속을 함으로써, 그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 마을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

크리스티안 뫼르크
크리스티안 뫼르크
작가가 설정한 ‘이야기꾼’의 역할이 치정 살인극에 멋을 부여한다. 짐은 “오늘 밤 저는 샤너시(아일랜드의 전통적인 이야기꾼)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랜 전통에 따라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과 위험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라고 운을 뗀다. 짐의 이야기에서 동생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형을 질투해 죽이지만 늑대로 변해버리는 죗값을 치른다.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공주를 만나지만, 그녀를 사랑해야 할지 죽여야 할지 그의 마음속 인간과 야수가 다툰다.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환상적인 이야기를 작가는 짐의 사연과 절묘하게 맞물어 놓는다. 여기에 호기심 많은 이야기꾼 니알이 살인사건의 전모를 긴박감 있게 들려주는 역할을 맡는다. 집배원으로서 무료한 일상에 지쳐 있지만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니알에게 피오나의 일기장은 일상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니알은 이야기꾼이지만 스스로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달링 짐’ 원서에 실린 일기장 이미지. 이 소설은 피오나와 로이진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사건의 전모를 쓴 일기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진 제공 은행나무
‘달링 짐’ 원서에 실린 일기장 이미지. 이 소설은 피오나와 로이진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사건의 전모를 쓴 일기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진 제공 은행나무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꾼은 작가 크리스티안 뫼르크다. 전직 영화 칼럼니스트답게 소설은 공들여 만든 로맨틱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질투와 배신, 광기와 폭력 같은 추악한 인간성이 빚어낸 극적인 드라마를, ‘사랑과 위험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전달하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해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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