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승부를 결정짓는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강약 조절이다. 프로기사들은 수읽기 싸움에서 지는 것보다 강약 조절에 실패해서 진다. 잡으러 갈 건지, 살려줄 것인지 혹은 강하게 나갈 건지 아니면 물러설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이 바둑도 그 전형적인 사례다. 흑은 초반 ‘산 넘고 바다 건너는’ 험한 길을 잘 헤쳐 나와 우세라는 탄탄대로에 접어들었다. 이 대로를 걸어가는 도중 백이 74로 가볍게 견제에 나섰다. 백으로선 상대가 너무 잘나가니까 속도나 좀 줄여보자는 뜻이었다. 흑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참고도 흑 1처럼 브레이크를 밟고 백이 살아갈 때 흑 5로 다시 속도를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흑은 이 한 점을 요절내겠다고 덤볐다. 참고도 ‘가’(흑 75)는 백에게 어떤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강수였으나 이것이 오히려 일파만파의 변화를 일으켰다. 백이 76으로 즉각 움직이며 ‘속도조절용 응수타진’은 난타전으로 번졌다. 흑은 이 백을 그냥 살려줄 수 없어 흑 89로 끊어갔지만 이 돌은 백의 역공을 받아 거꾸로 곤마로 몰렸다.
백은 중앙 흑 돌을 몰아가며 좌상에 60집에 달하는 큰 집을 마련했다. 이후 흑은 127로 저항했지만 백의 정확한 방어에 무릎을 꿇었다. 허영호 7단이 입단 후 처음으로 국수전 본선에 올랐다.
62…45, 148…82. 소비시간 백 2시간 40분, 흑 2시간 59분. 170수 끝 백 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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