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생태 먹이별 분류 ‘곤충의 밥상’ 펴낸 정부희 씨
◇곤충의 밥상/정부희 지음/480쪽·4만5000원·상상의숲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글 쓰는 곤충학자’로 변신한 정부희 씨. 그는 “어릴 적 자연 속에서 자랐던 경험이나 영문학을 전공한 것 모두 지금 이렇게 곤충을 연구하고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오피스텔. 연구실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 싱크대 찬장을 열자 버섯이 담긴 플라스틱 밀폐용기가 가득했다. 식용(食用)은 식용인데, 사람용이 아니다.
뚜껑을 열고 버섯을 들추자 새끼손톱 반만 한 크기의 거저리가 튀어나왔다. 버섯을 먹고 사는 버섯살이 곤충이다.
“여기 있네요. 아유 예뻐라! 지난해 가을에 채집했는데 겨울을 여기서 난 거예요.”
이 연구실의 주인인 정부희 씨(48)가 탄성을 질렀다. 정 씨는 버섯살이 곤충을 주제로 삼아 박사학위를 받은 곤충학자. ‘곤충의 밥상’은 그가 곤충의 생태를 풀, 나무, 버섯 등 먹이에 따라 분류해 엮은 책이다.
“제가 살던 곳(충남 부여 인근)이 워낙 시골이어서 자연을 친구 삼아 지냈죠. 그 덕분에 곤충에게도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친근해요.”
정 씨는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두 아이를 키우다 30대 초반에 취미로 유적답사를 시작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났다. “답사를 다니다 보니 꽃과 풀이 보였고, 그 위에 사는 곤충들이 보였다”는 정 씨는 “곤충 이름을 알고 싶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답답해서” 2003년 성신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책을 낸 것도 정 씨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우리나라 곤충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것. 책 속에는 순우리말로 기록된 곤충 이름이 가득하다. 이미 축적한 자료와 관찰 경험이 있었지만 책을 내기 위해 2009년 1월부터 약 1년간 책에 나온 곤충들의 생태를 대부분 다시 관찰하고 사진도 다시 촬영했다.
상세한 관찰에 영문학도다운 표현력이 더해져 책 속에는 생생한 묘사가 가득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이야기책 읽어주듯 대화체를 사용했다. ‘8쌍의 다리를 배춧잎에 꼭 붙이고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큰 턱으로 쑥덕쑥덕 베어 씹어 먹습니다.’(배추흰나비 애벌레에 관한 설명) ‘박각시 애벌레는 곤충 애벌레 중에서 가장 큰 헤비급 선수입니다. …통통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스멀스멀 기어가는 모습은 귀엽습니다.’
정 씨가 지금까지 거둔 학문적 성과도 이 책에 담겨 있다. 바로 버섯살이 곤충에 관한 기록이다. 도깨비거저리, 애기버섯벌레, 흑진주거저리 등 버섯을 숙주 삼아 살아가는 곤충은 지금까지 한국 곤충학계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종이다.
그는 앞으로 버섯살이 곤충에 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하는 한편 곤충에 관한 대중서를 쓸 계획이다. 다음 주제로는 곤충의 성생활을 염두에 두고 있다.
평범한 주부에서 곤충학자가 된 그에게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는 ‘곤충 관찰 노하우’를 물었다.
“버드나무는 봄부터 가을까지 잎이 거의 지지 않아요. 아마 딱정벌레나 꿀벌을 최소 다섯 종 이상은 관찰하실 수 있을 거예요. 사실 곤충 이름은 몰라도 상관없어요. 10분만 자연 앞에서 시간을 내 보시면 곤충도 사람처럼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그리고 생태계의 소중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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