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원숙한 실험… 중견화가들의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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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화랑가에 중량감 있는 작가들의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젊은 작가를 편애했던 미술시장이 균형을 잡아가는 것일까. 중진 중견작가들이 묵직한 내공을 드러내는 전시는 봄을 알리는 꽃만큼 반가운 소식이다. 이 중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김홍주 전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마련한 강익중 전을 소개한다.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컬렉터와 미술애호가들도 주목하는 복 받은 작가들이다. 갤러리들이 이웃해 있으니 두 전시를 둘러보는 나들이 일정을 짜보면 좋겠다.

김홍주 전: 전시장 1층에는 배경을 생략한 채 거대한 꽃잎과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세필을 사용해 꼼꼼하고 반복적으로 붓질한 과정의 시간과 행위가 녹아든 작업이다. 2층에 가면 1990년대 제작한 ‘글자그림’이 걸려 있다. 얼핏 글씨처럼 보이지만 논밭을 그린 이미지를 작가 마음대로 조합한 것으로 해독이 불가능하다.

“내가 그리는 이미지들은 어떤 특별한 상징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공백을 주기 위한 것이다. 내 작업의 의미는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다고 생각한다.”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탐구해온 화가 김홍주 씨(65·목원대 교수)가 늘 되풀이하는 얘기다. 자신의 그림에 상징이나 의미, 특정한 메시지가 없다. 그냥 시각적 이미지로 대해달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소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제목도 안 붙인다. 관습적 해석과 고정관념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물을 본다 혹은 이해한다는 사람들의 인식에 딴죽을 거는 작가. 그에게 회화는 낯익은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한 도전이자 시도이다. 풍경을 그릴 때 그는 원근법 대신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이용하고 동양화처럼 여백을 활용한다. 실제 장소가 아니라 마음 속 풍경을 그린다. 이런 요소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그릴까를 고민하는 작가의 개성적 회화가 탄생했다. 30일까지 국제갤러리 신관. 02-733-8449

강익중 전: ‘기뻐도 그린다/배고파도 그린다/졸려도 그린다/아는 것을 그린다/쉬운 것을 그린다’

재미 아티스트 강익중 씨(50)가 고백하는 그림 그리는 법이다. 갤러리 현대 신관과 본관의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전은 이렇게 완성한 다양한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자리다. 광화문 공사 가림막 등 공공미술로 친숙한 작가지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14년 만이다.

신관에 들어서면 바닥에 작은 달항아리 1392개가 놓여 있다. 물소리와 연계한 설치작품이다. 이를 지나면 마음 속 인왕산의 능선을 표현한 작품부터 달항아리 백자사발 들꽃 폭포 등 익숙한 소재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난다.

특히 그가 크레파스를 이용해 자신이 아는 지식을 써놓은 ‘내가 아는 것들’은 다 보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 ‘코가 닮은 사람끼리 친하다’ ‘감기가 올 때 헤어드라이어로 5분간 목뒤를 따뜻하게 해주면 좋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정말 없다’ 등. 작가와 내 마음이 일치하는 문장을 발견하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본관에선 그를 대표하는 ‘달항아리’ 그림을 볼 수 있다. 2m 넘는 대작도 있다. 달항아리의 형상 속에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을 보듬어낸 작품이다. 5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 신관과 본관. 02-2287-35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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