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3400만 인도 과부들의 수절이 숙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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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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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아쉬람

‘아쉬람’에서 18세 여인 깔랴니(왼쪽)는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단어의 부당한 의미를 평생 실천할 것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당연히, 사랑은 찾아온다. 사진 제공 에스와이코마드
‘아쉬람’에서 18세 여인 깔랴니(왼쪽)는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단어의 부당한 의미를 평생 실천할 것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당연히, 사랑은 찾아온다. 사진 제공 에스와이코마드
“과부는 평생 수절하면서 인고(忍苦)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정절을 지키지 않으면 짐승의 자궁에 환생한다.”

25일 개봉한 ‘아쉬람’ 오프닝에 깔리는 이 섬뜩한 자막은 힌두교의 경전인 마누법전 5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영화는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준수한 외모의 남녀와 깜찍한 여자아이가 펼치는 이야기를 담는다. 하지만 그 내용은 오프닝 자막만큼 섬뜩하다.

철모르는 여덟 살 소녀 쭈이야는 오밤중에 잠을 깨운 아버지로부터 영문모를 소리를 듣는다.

“너, 혼례 올렸던 거 기억나니?”

“…? 아니.”

“네 남편이 죽었어. 넌 이제 과부란다.”

“…? 응 알았어, 아빠. 그런데 언제까지?”

머리를 박박 깎일 때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하지 못한 쭈이야는 과부들이 모여 사는 아쉬람에 끌려오고 나서야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때늦은 울음을 터뜨린다. 아쉬람은 교인들이 머물며 수행하는 사원을 뜻하는 힌디어다. 천성이 발랄한 쭈이야는 “내일이면 엄마가 데리러 올 거야”라고 넉살 좋게 얘기하지만 지옥 같은 하루하루가 거짓말처럼 쌓여가기 시작한다.

인도는 21세기 세계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몫을 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드문드문 전해지는 그곳의 문화 이야기는 ‘대국’이라 부르기 머뭇거리게 만드는 물음표를 던진다.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8개 부문을 휩쓴 뒤 인도인 아역 배우들은 한몫 잡아보려는 부모들로 인해 부잣집에 팔려갈 뻔한 고초를 겪었다. ‘아쉬람’이 그려내는 것도 매력적인 이마의 빈디(붉은 점)로만 기억되는 인도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당하는 비인간적 처우의 실상이다.

사춘기 전에 사별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남편’ 때문에 평생을 독수공방하는 여인들의 삶은 ‘짐승의 자궁에 잉태된’ 것만도 못해 보인다. 강가에서 옷깃을 스친 사람들은 부정 탔다며 다시 목욕을 한다. 변변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처지라 길가에 느런히 앉아 구걸을 한다. 좀 예쁘게 생겼다면 그렇게만 지낼 수도 없다. 굶어죽지 않기 위한 매춘은 마누법전의 가르침을 가뿐히 무시한다.

흐르는 강을 억지로 막으면 둑이 무너지는 법이다. 아무리 담을 높이 쌓아도 피 뜨거운 젊은 남녀의 연분은 어떻게든 이음매를 찾는다. 예정된 것은 당연히 비극이다.

‘아쉬람’은 발리우드의 발랄한 음악과 춤으로만 인도 영화를 어렴풋이 아는 관객에게 견문을 넓혀준다. 간디가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70여 년 전 일이라고 넘겨버리려는 순간, 클로징 자막이 뒤통수를 때린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인도의 과부는 약 3400만 명. 그들의 생활 지침은 여전히 2000년 전 만들어진 마누법전의 ‘가르침’이다.

젖살 통통한 쭈이야의 철없는 발랄함이 중간 중간 조금씩 늘어지려 하는 이야기의 리듬감을 되살린다. 아쉬람의 고참 수용자가 “법전에 이르길 아녀자는 원래 지아비에 딸린 목숨이라 지아비가 죽으면 아녀자도 반은 죽은 목숨이라고 했어!”라고 으름장을 놓자 소녀는 지지 않고 대꾸한다.

“그래도 반은 살아 있잖아요!”

살 수 있으리라 보이지 않는 끔찍한 곳에도 삶은 있다. “경전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브라만은 절대 예우하지 말라고 했다”는 남자주인공의 대사는 사회의 경건한 끔찍함에 대해 영화가 던지는 충고다. 15세 이상 관람가. ★★★☆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영화 ‘아쉬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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