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하늘로 부치는 사모곡… 묵직한 타건과 절제미… 훌쩍 큰 음악가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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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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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혁 피아노 리사이틀
테크닉 ★★★★★ 해석 ★★★★

20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예전의 자신만만함과 개성 대신 소박함과 절제로 채운 라벨과 쇼팽, 프로코피예프를 들려줬다. 사진 제공 크레디아
20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예전의 자신만만함과 개성 대신 소박함과 절제로 채운 라벨과 쇼팽, 프로코피예프를 들려줬다. 사진 제공 크레디아
“의미가 있는 앙코르였지요?”

“예.” 공연 직후 분장실에서 만난 연주자는 짧지만 단호하게 긍정했다.

20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피아니스트 임동혁 독주회는 첫 곡부터 범상치 않았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연주를 위해 특유의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한 임동혁은 왠지 의기소침해 보였다. 잔뜩 구부린 그의 어깨만큼이나 첫 타건(打鍵)은 무게감으로 가슴마저 먹먹함이 전해졌다. 그건 슬픔이다. 질풍노도의 26세 젊은이가 지난해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어머니께 바치는 사모곡(思母曲). 결국 임동혁은 앙코르에서도 같은 곡으로 두 번 울었다.

예전의 자신만만함과 오기는 없다. 절제의 미덕까지 깨친 것일까.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가운데 ‘교수대’는 베르트랑의 시를 피아노로 그린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100년의 시간을 회귀해 클라라 슈만이 갑자기 반추(反芻)된다. 건반을 내려치는 법이 없이 오로지 음색에 치중해 쓰다듬는 고결한 피아니즘이 임동혁의 손끝에서도 피어올랐다. 기교를 잔뜩 드러내야 효과가 극대화되는 ‘스카르보’조차 자신이 설정한 선을 넘지 않으며 겸손을 지키려 애썼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는 더는 감정과잉의 쇼팽을 보여주지 않았다. ‘마주르카’는 폴란드의 흙냄새가 가장 짙게 밴 춤곡이자 쇼팽 음악의 근원이다. 의외였다. 그 본령을 마주한 임동혁은 쇼팽 연주의 핵인 ‘루바토’의 남발을 경계하며 도도함보다는 소박함을 택했다. 극도로 조탁된 소리의 효과는 객석 곳곳을 휘감아 돌았다. 확 달라진 면모다.

9년 전 그는 모스크바에서 노보데비치 수도원 예술가 묘역을 방문했다. 영하 20도의 한파에 가냘프게 서 있는 프로코피예프의 묘지를 지켜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7번에서 마음껏 폭발하는 혈기는 2악장 ‘칸타빌레’에서 오히려 더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출했다.

한때 독설과 반항으로 회자됐던 젊은이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로 돌아와 있었다. 이는 테크닉 과시를 위해 ‘오버 액션’을 일삼는 최근 일부 젊은 연주자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이유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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